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은 겉으로는 ‘무대응’ 전략을 펴고 있지만 반전의 기회를 엿보며 반격 태세를 갖추고 있어 양 진영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박 전 대표 측은 ‘검증’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정인봉 변호사의 문제 제기에 대한 ‘박 전 대표 책임론’ 언급에 대한 이 전 시장 측 책임 추궁을 동시에 펴고 있다.
우선 박 전 대표가 이 전 시장의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 씨의 ‘해외도피 자금 제공설’ 등의 주장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박 전 대표는 19일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검증 여부는) 당이 선택할 일”이라면서도 “(검증하지 않을 경우) 국민은 사실을 잘 모르게 된다. 내용이 하찮은 것인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고 말했다.
측근들도 가세했다. 최경환 의원은 “김 씨가 폭로한 내용은 새로운 것인 만큼 당 검증위원회에서 규명해야 한다”며 “당이 김 씨를 부르고 대질신문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위증교사 혐의는 범인 도피죄보다 훨씬 죄질이 나쁜 것으로 당이 나서 진실 여부를 검증하지 않을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사모 총동원령 발동’이란 제목의 이 e메일은 김 씨가 제기한 주장을 모두 열거한 뒤 “이런 후안무치하고 패륜적인 후보가 사퇴할 때까지 투쟁할 것을 공표한다”며 “1차 투쟁에 한 분도 빠짐없이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이 e메일은 “(김 씨의 주장에 대한) 해당 기사가 (인터넷상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모든 기사를 각종 사이트에 퍼 날라 전 국민이 이러한 진실을 알 때까지 온라인으로 투쟁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지침까지 내렸다.
김 씨는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전 시장 측이 공판 과정에서 허위진술을 하도록 교사하면서 그 대가로 1억2500만 원을 줬고, 이 전 시장이 자신에게 ‘제3자 화법’을 통해 살해 위협까지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내 갈 길 가겠다”=이 전 시장은 ‘검증 공방’에서 한발 물러나 있으면서 정책과 경제 챙기기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오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한강 난간에서 몇 번이나 물살을 들여다보고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형준 의원은 “이 전 시장은 ‘나의 길을 묵묵히 가겠다’고 생각한다. 검증은 당 검증위에서 알아서 할 일로 후보나 캠프가 개입하면 정치 저질화에 일조하는 꼴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편한 심기는 이 전 시장 진영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에 대해 “설 연휴를 편안하게 보내고 있는 국민을 정치 지도자가 실망시켜서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김 씨의 주장에 대해 정 의원은 “선거 때마다 저렇게 돌아다니며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김 씨는 배신과 폭로 협박 공갈로 점철된 인물로 그의 행동은 ‘김대업 수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밝혔다.
김 씨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진수희 의원은 “김 씨가 정 변호사를 만났다고 했는데 정 변호사가 캠프 법률특보 직함을 달고 문제의 인물을 만난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사건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박사모의 총동원령에 대해 이 전 시장의 팬클럽 모임인 ‘엠비(MB) 연대’의 백두원 사무국장은 “이것은 팬클럽 수준에서 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엠비연대 차원에서는 정치 공방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전 시장의 한 측근은 “이런 것이 조직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이 아니냐”고 발끈하기도 했다.
한편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 수사 검사였던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이날 “이 전 시장에 대한 수사는 잘됐다”면서 “(김 씨가 주장한) 위증 교사 등은 당시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김유찬은 누구
불법자금 폭로 前비서관…지방선거 무소속 출마도
김유찬 씨는 1995년 5월부터 15대 총선 두 달 뒤인 1996년 6월 중순까지 이명박(전 서울시장) 당시 신한국당 의원의 비서관을 지냈다. 김 씨는 비서관 퇴직 직후인 1996년 9월 10일 이 전 시장이 총선 때 6억 원대의 불법 선거자금을 썼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김 씨는 폭로 5일 뒤 이 전 시장 측에서 건넨 1만8000달러를 갖고 홍콩을 경유해 캐나다로 떠났다.
검찰 수사 발표문에 따르면 당시 김 씨는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에게서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폭로하는 대가로 3억 원을 받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김 씨는 교통비 명목 등으로 40여만 원을 받은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김 씨 본인도 이 전 시장과 마찬가지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1998년 지방선거 때 무소속으로 서울 영등포구청장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는 이 전 시장 재직시절부터 서울시가 토지분양권을 갖고 있던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137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짓는 사업에 입찰을 추진 중인 부동산개발업체 서울IBC의 대표로 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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