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경수로 한마디 언급없이 “앞으로 논의하자”

  • 입력 2007년 2월 14일 02시 59분


인공위성에 포착된 영변 핵시설 2003년 7월 인공위성에 포착된 북한 평북 영변군의 핵시설. 북핵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 조치에 합의함에 따라 초기 이행 조치로 60일 내에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면 중유 5만 t을 지원하기로 했다. AFP 연합뉴스
인공위성에 포착된 영변 핵시설
2003년 7월 인공위성에 포착된 북한 평북 영변군의 핵시설. 북핵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 조치에 합의함에 따라 초기 이행 조치로 60일 내에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면 중유 5만 t을 지원하기로 했다. AFP 연합뉴스
북핵 6자회담 초기 이행조치 합의서 내용을 1994년 제네바 합의문, 2005년 9·19공동성명과 비교해 보면 북-미관계의 핵심 쟁점인데도 불구하고 빠져 있는 대목이 적지 않다.

외교적 합의문서는 사용된 단어나 조사는 물론 쉼표가 어디에 찍혀 있느냐에 따라 온갖 해석이 가능하며 민감한 쟁점 사안은 누락 또는 간접 언급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번 합의서에서 빠진 대목은 협상 대표들이 어떻게든 이번 회담이 무산돼선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 차기 회담으로 넘겨놓은 사안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향후 협상에서 핵심 쟁점이 될 주제인 셈이다.

물론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해제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사실상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이었던 만큼 공공연한 이면합의로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번 합의서에 핵무기(nuclear weapon)와 경수로(light water reactor)가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은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9·19공동성명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고 명시했지만 이번 합의서는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의 핵시설’만을 초기 단계에 폐쇄·봉인할 대상으로 언급했다.

제네바 합의문에 명시됐던 태천의 200MW 원자로(건설 중)는 언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동성명에 나온 대로 북한이 포기할 대상이 되는 모든 핵 프로그램 목록을 논의한다(discuss)’고만 돼 있다.

핵무기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논의한다’로 수준을 낮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해 10월 핵실험으로 이미 핵무기 보유국이 되어 ‘중대한 사정 변경’이 이뤄진 만큼 핵무기에 대한 논의는 별도의 군축회담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9·19공동성명 발표 직후 북-미 간에 격한 대립을 보였던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도 빠져 있다.

이번 합의서는 북한 지원 방안에 대해 ‘공동성명의 1항과 3항을 상기하며’라는 문구로 간접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공동성명 1항에는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공급 문제를 논의한다’, 3항에는 ‘한국이 200만 kW의 전력 공급 제안을 재확인한다’는 대목이 들어 있다.

경수로 논란은 물론 한국의 ‘중대 제안’은 여전히 살아 있는 쟁점인 셈이다.

이와 함께 이번 합의서에는 제네바 합의문이나 9·19공동성명에는 없는 새로운 대목이 추가됐다.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각각 60일 내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를 ‘시작’하고 적성국 교역법 적용의 종료를 ‘진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테러지원국과 적성국의 딱지를 떼는 것은 국제기구의 금융 지원 등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 북한의 강력한 요구가 반영된 셈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리비아의 경우 2003년 말 핵 프로그램 등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한 뒤 2년 반이 지난 뒤에야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빠졌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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