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왔다… 뭉치자” 정치권 밖도 달아오른다

  • 입력 2007년 1월 13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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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시민사회 진영이 세(勢) 결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파 진영은 우파 진영대로, 좌파 진영은 좌파 진영대로 이념 노선과 전열을 가다듬으며 ‘빅 이벤트’에 대비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를 먼저 주도한 것은 보수진영이다. 대선에 두 차례 패배한 보수 진영의 일부 인사들이 2004년 ‘보수의 개혁’을 내세우며 뉴라이트 운동을 전개하며 세 결집에 나섰다. 한편 노무현 정부의 잇단 실정으로 ‘동반 몰락’ 위기에 처한 범진보 진영도 최근 우파 진영의 움직임에 맞서 대선을 겨냥한 조직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보수

“우리는 이미 배부른 보수가 아니다.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위해 보수가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

1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는 중도 우파인 뉴라이트 계열과 정통보수 단체들이 의미 있는 첫 만남을 가졌다. 그동안 색깔을 달리하며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보수 단체의 관계자 300여 명이 ‘대선 필승’이라는 목표로 ‘보수’의 깃발 아래 대거 집결한 것.

뉴라이트 계열에선 뉴라이트전국연합, 선진화국민회의, 기독교사회책임, 한반도선진화재단, 안민정책포럼 등의 대표들이, 정통 보수진영에선 국민행동본부, 세계평화포럼, 자유시민연대 등의 대표들이 이 행사에 참석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인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올해 대선은 대한민국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이라며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올해 대선에서 보수 진영의 대연합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한 연합전선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최진학 정책실장은 “신구(新舊) 보수 세력이 처음 만난 것이지만 ‘맞선’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총괄했던 국민운동본부와 비슷한 규모와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통 보수 계열인 국민행동본부는 노무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3·1절에 열 예정이다. 외교 안보 등 특정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행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 행사에는 기존 보수 단체는 물론 뉴라이트 단체들도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국민행동본부 신혜식 대변인은 “그동안 정통보수 진영은 단체별로 각자 행동해 왔지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강정구 교수 파문 등을 거치며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하나로 결집하고 있다”며 “6월에는 보수 세력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 중 뉴라이트전국연합은 한나라당과의 협력에 적극적이다. 창립 1년여 만에 전국 183개 조직, 회원 11만 명으로 성장한 이 단체는 지난해 11월 창립 1주년 기념행사에서 올해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뉴라이트의 모태인 자유주의연대 측은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신구 보수세력의 대연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지에 주목하고 있다. 조직력이 강한 정통 보수 단체들과 386 운동권에서 전향한 뉴라이트 단체들이 힘을 합칠 경우 상당한 파급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수 진영은 주장한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진보

정대화 상지대 교수, 최열 환경재단 대표,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양길승 녹색병원장 등 진보 성향 인사들은 1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시국 토론회를 열고 “올해 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 2월경 범진보 세력의 연합체인 ‘창조한국미래구상(가칭·이하 미래구상)’을 정식 출범해 전국 조직으로 만들 계획이다.

미래구상 측은 이날 토론회 발제문에서 “지금은 노무현 정권뿐 아니라 진보개혁세력 전체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라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기존 정치세력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새로운 정치운동’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새로운 정치운동의 단기적 목표는 연대와 연합을 통해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며 “진보개혁세력의 단일 후보인 ‘국민 후보’를 추천하겠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그동안 진보 진영이 해 온 공명선거 캠페인이나 낙천·낙선 운동, ‘물갈이’ 운동 등은 정치 발전에 도움을 주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정치권을 바꾸지는 못했다”며 “직접 후보를 만들어 좋은 사람을 당선시켜야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미래구상 측은 자신들의 대선 전략을 “‘선(先) 정책 후(後) 후보’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각 분야에서 신뢰받는 전문가를 모아 후보군을 만들고 여기서 역할을 분담하는 컨소시엄 형태를 이루거나 경선을 통해 단일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것.

정계개편 과정에서 시민단체 등 외부 세력을 흡수하려는 열린우리당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나 미래구상 측의 반응은 아직 싸늘하다.

최 대표는 “여권 통합 논의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기존 정치권에 계신 좋은 분들이 우리 쪽에 참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들이 실제 정당 수준의 결사체를 결성할 수 있을지, 궁극적으로 대선후보까지 낼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정당에 비해 내부 결속력이 떨어지고,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이 정계개편 과정에서 얼마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여권에서 대선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나 박원순 변호사는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중도

범여권 인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중도개혁, 중도실용 등 너도나도 ‘중도(中道)’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념 좌표를 묻는 질문에 ‘중도’라고 대답하는 층이 현 정부 들어 부쩍 증가한 탓도 있지만, 좌파적 성향을 보인 현 집권세력과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분석도 많다.

이를 박세일 교수 등은 ‘사이비중도’라고 비판한다. 좌파, 혹은 진보가 국민들에 먹혀들지 않고 인기가 없자 대선을 앞두고 자기 정체성을 중도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범여권 진영에서 중도개혁을 거론하는 이들은 “현 집권 여당 내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워낙 넓었다”며 “좌파적 성향의 인사를 빼고 시장경제와 경제번영을 추구하되 복지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는 실용세력을 중도개혁 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보수 진영에선 박 교수 등이 주도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및 선진화국민회의가 중도를 표방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중도보수’라 할 수 있다.

이념 노선이 양 극단을 향해 치닫지 않고 중간으로 수렴된다는 점에선 의미 있는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민사회 영역에서 특정한 이념적 색깔 없이 순수하게 중도를 지향하는 세력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진짜 중도’로 인정하는 그룹도 있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법륜 스님 등이 대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화해상생마당’. 이들은 비록 회원이 30여 명에 불과하지만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10일 보수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시민단체와 종교계 인사들이 ‘새해모임’이란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이 모임이 주선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한국사회는 이미 그 다양한 가치관만큼이나 다양한 세력들이 경쟁·협력·공존하면서 살아가는 다원화사회로 변모했다”며 중도의 모색을 선언했다.

화해상생모임 측은 “대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을 앞두고 각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세력의 갈등이 첨예화할 것이기 때문에 완충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은 갈등이 첨예화하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므로 중도지식인의 관점에서 국민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새해모임에 참석한 각계 인사들은 각각 보수 혹은 진보 진영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선 결국 정치적 지향에 따라 엇갈린 행보를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좌파

지난해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 등을 주도한 단체들도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

전국민중연대, 통일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22개 좌파 성향 단체는 9일 한국진보연대 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올해 대선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진보연대 박석운 상임운영위원장은 “이번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담론 구조의 틀을 바꾸는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출범하는 진보연대에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등 친북 성향의 민족해방(NL) 계열 단체들도 참여했다.

노선 갈등으로 진보 진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민중민주(PD) 계열 단체들은 대거 불참했다.

한총련, 범민련 남측본부 등 진보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일부 친북 성향 단체는 노골적으로 ‘반(反)한나라당 투쟁’을 외치고 있어 진보연대의 대선운동은 반미와 연계된 ‘반한나라당’ 전선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진보진영 내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과 대선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할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연대는 내부 자료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다”며 “2004년 전국민중연대 주요 간부들이 대통령 탄핵 반대운동에서 주도 역할을 한 것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고 노 대통령에 대한 반대 자세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NL 계열을 중심으로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노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반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김대중 정부 때도 ‘정권 퇴진’을 외쳤던 이들이 노무현 정부 때는 ‘심판’ ‘규탄’ 정도 수위의 투쟁에 그치는 것도 이런 고민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현실적으로 당선이 가능한 범여권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쪽과 분명한 정체성을 위해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방침이 엇갈리고 있다. 진보연대에 민주노동당이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민노당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것도 이런 내부 사정 때문.

진보연대는 한미 FTA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어떤 성향의 후보가 범여권 후보가 되는지를 보고 대선에 임하는 방침을 최종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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