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노화준]비서진의 무능, 대통령의 실패

  • 입력 2006년 11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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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분노와 허탈에서 나오는 한숨이 하늘을 찌른다. 수도권에서 집을 소유한 사람은 ‘세금폭탄’이 곧 터진다는 예고 때문에, 집을 장만하지 못한 사람은 집을 장만할 꿈이 무너져서,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에 한숨을 쉰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피해는 특정 계층을 넘어서 모든 국민에게 미치고, 계층 갈등을 증폭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앨버트 허시먼의 충성이론에 따르면 충성은 불만과 함수관계에 있다. 사람은 조직이나 사람에 대해 문제를 느끼면 불평(voice)을 하고, 이런 불평불만이 계속되는데도 고쳐지지 않을 때에는 지지를 철회하거나 떠난다(exit)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의 불만은 제품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난 3년여 동안 국민은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행정수도 이전, 사학법 개정 등 여러 가지 정책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 온 청와대의 비서와 보좌관은 국민의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을 때 그것이 새로운 혁신의 필요성을 알리는 신호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또 대통령을 설득해 정책을 바로잡는 노력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현명한 판단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조언하는 것이 비서의 역할이다. 이를 수행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다. 민주국가의 국정 운영에서 분권화된 수많은 하위기관이 최대한의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자율성을 주고, 이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조정하는 것이 정치적 리더십이다. 대통령이 이런 정치적 리더십을 구축하고 확대 유지하는 과정을 보좌하는 일도 비서의 역할이다.

자발적인 노력과 이에 토대를 둔 창의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권력’보다 ‘권위’가 더 요구된다. 권위는 전문성에서 나온다. 권력의 힘이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라면, 권위는 전달된 메시지에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한다. 얼마 전에 부동산 정책을 지휘한 비서관이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고 고백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전문가의 권위가 아니라 권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이끌어 왔다는 말이다.

시장원리보다는 세금폭탄과 강압적인 규제에 토대를 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면서, 대통령에게 정책이 실패할 수 있다는 직간을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오히려 일부 비서관이 보인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오만한 태도가 대통령의 통합적 리더십을 훼손함으로써 국민의 불만과 원성을 끝없이 높였고, 국민의 마음이 참여정부와 집권당에서 떠나도록 하는 원인을 제공해 왔다.

정책공동체는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전문가는 전문가를 알아보고, 정책을 설계하거나 평가하는 과정에 이들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노력한다. 미 환경보호국은 규제 정책을 설계하기 위한 규제영향분석 시행 청사진을 작성할 때 누가 관련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인가를 식별하고 활용하는 계획을 포함시킨다. 최고의 전문가를 정책 설계 과정에 참여케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책 대안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올바른 정책의 선택에는 전문가의 참여가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

이제 남은 15개월여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과 함께 떨어져 나간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가능성을 높이도록 경험과 전문성이 풍부한 비서진으로 쇄신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관료와 정책공동체 구성원의 자발적 협력과 창의력을 이끌어 내고, 정책 추진의 성공을 담보해야 한다.

노화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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