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이상한 이재정 씨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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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어제 한 강연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체제 붕괴를 추구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은 영어로 진행됐는데 그는 ‘붕괴’를 ‘때려 부순다’는 뜻인 ‘디몰리션(demolition)’으로 표현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들었으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미국은 ‘체제 변화(regime change)’라는 말도 너무 강하다고 해서 ‘체제의 행태 변화(change of regime behavior)’라는 말로 바꿨는데 북한을 ‘때려 부순다’니, 평소 미국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이면 저런 말을 할까 싶을 것이다.

▷이 내정자는 한미동맹에 대해서도 “긴밀한 양자 간 협력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국가적 운명을 결정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생각하는 ‘국가적 운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혹시 ‘남북에 의한 통일 자주정부의 수립’이라면 지금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핵을 가진 북과의 평화적 공존을 한미동맹보다 중시한다면 관념에 빠진 얼치기 통일 지상주의자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그는 성공회 신부 출신의 정치인으로 북한을 깊이 연구한 적도, 북과 직접 상대한 적도 없다. 재야 시절 통일운동을 했다지만 통일 문제의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모르면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라도 갖게 되고, 그만큼 실수도 줄어드는 법이다. 통일부 장관이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닌데도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사고를 치기 쉽다.

▷학계에서 북한 전문가로 인정받았던 이종석 현 장관도 임기 중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을 만큼 고전(苦戰)을 면치 못했다. 통일부 장관이라는 자리가 그저 북한만 쳐다보며 큰 틀의 국익(國益)외교에 무신경해도 좋을 자리는 아니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미국이 왜 외면하는지 의문”이라는 이 내정자가 외교 안보 정책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지 의구심이 든다. 17일 열리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주목된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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