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바꾼 日 “총리가 직접 지지표명할 것”

  • 입력 2006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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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열기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2일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4차 예비투표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사실상 선출이 확정됐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유엔본부에 전 세계 취재진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였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취재 열기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2일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4차 예비투표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사실상 선출이 확정됐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유엔본부에 전 세계 취재진이 몰려 높은 관심을 보였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볼턴 美유엔대사 “투표결과 만족”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대사(오른쪽)가 2일 저녁 뉴욕의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에서 개최된 개천절 리셉션에 참석해 최영진 대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볼턴 대사가 타국 공관 리셉션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유엔 사무총장에 사실상 내정된 반기문 장관에 대한 지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볼턴 美유엔대사 “투표결과 만족”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대사(오른쪽)가 2일 저녁 뉴욕의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에서 개최된 개천절 리셉션에 참석해 최영진 대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볼턴 대사가 타국 공관 리셉션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유엔 사무총장에 사실상 내정된 반기문 장관에 대한 지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4차 예비투표 결과 한국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당선이 확실해지자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은 3일 기자회견에서 “(사무총장을) 아시아에서 내겠다고 계속 말해 왔다. 예정대로 됐으니 잘된 일 아니냐”며 반 장관을 공식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은 예비투표에 참가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10개국 중 하나. 10월의 안보리 순번제 의장국이기도 하다.

또 아소 외상은 “일본의 지지 표명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할 것”이라고 말해 9일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정식으로 지지 표명을 할 것임을 밝혔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당초 일본 정부 내에서는 한국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해 왔다는 점에서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강했다고 전했다. 또 이 신문은 한국이 대북제재에 신중한 자세를 취해 온 것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일본 내 시선도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4차 예비투표에서 5개 상임이사국의 반 장관 지지가 분명해지자 ‘한일관계 회복을 위해 반 장관을 지지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이날 “이전에는 일부 강대국의 인가를 받고 기타 국가들이 반대하지 않는 인사가 그 자리에 올랐으나 반 장관은 절묘하게도 천시 지리 인화를 모두 한 몸에 모아 당선됐다”고 전했다. 맹자에 나오는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는 구절을 인용한 것.

신화통신은 또 왕광야(王光亞) 유엔주재 중국대사를 인용해 “한국은 물론이고 반 장관이 적극성을 발휘해 아시아인의 활기 있고 건설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반 장관이 다음 주에 유엔 사무총장으로 확정된 뒤 공식적인 성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반 장관은 ‘타협의 대가’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유엔에서도 강대국과 약소국,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중립적인 자세로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문제 등 주요 외교 현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이날 “러시아의 반 장관 지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한국과 유엔의 ‘인연’에도 주목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 한국에서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유엔군의 6·25전쟁 참전과 유엔 감시하의 정부 수립 과정을 언급했다.

프랑스의 르피가로는 “반 장관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유엔 주재 한국대사를 지냈기 때문에 유엔을 잘 안다”고 평가하고 “당시 미국 정부의 호감을 샀다”고 전했다.

그러나 영국의 더타임스는 “조용히 얘기하는 스타일인 한국의 반 장관이 테러, 기아 문제 등을 다뤄야 하는 큰 직책을 맡기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고 지적했다.

BBC뉴스의 유엔 담당 크리스 모리스 기자도 “반 장관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라면서 “지금 유엔은 힘든 시기를 헤쳐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명확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물음표를 달았다.

특파원 종합

■4차 예비투표 안팎 “상임이사국 반대표 없다” 소식에 안도

2일 오후 4시 35분(현지 시간·한국 시간 3일 오전 5시 35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2층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 주변은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회의실에서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뽑기 위한 4차 예비투표를 마친 안보리 이사국 일부 대사가 빠져나오자 100여 명의 취재진이 회의실 입구로 몰려들었다. 취재진의 관심사는 사무총장 선출에 거부권을 가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이 어떤 후보에게 반대표를 던졌느냐는 것.

이날 4차 투표는 1, 2, 3차 예비투표에서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이 같은 색깔의 투표용지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각각 파란색과 흰색의 투표용지를 사용해 상임이사국의 의중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곧 유엔본부 내에 “한국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해 찬성 14표를 얻었다”는 소식이 돌았다.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기자들에게 “1위와 2위 격차가 매우 크다”고 말해 사실상 반 장관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줬다. 볼턴 대사는 ‘반 장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워싱턴과 뉴욕에서 훌륭하게 일해 온 매우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뒤이어 나온 왕광야(王光亞)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브리핑을 통해 ‘화끈하게’ 반 장관이 안보리 추천 유엔 사무총장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반 장관은 15개국 가운데 찬성 14표와 기권 1표를 받았다. 반대가 없어 사실상 만장일치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에 반 장관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에서 유엔 안보리 의장인 오시마 겐조(大島賢三) 유엔 주재 일본대사에게서 전화로 투표 결과를 전해 들었다. 곧이어 공관엔 언론사의 전화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반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45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투표 결과를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반 장관에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쁘다. 아직 절차가 남아 있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축하했다.

정치권에서도 반 장관이 사실상 사무총장으로 확정된 것을 적극 환영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고,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대한민국 외교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고 축하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유엔 사무총장은?…국가원수급 예우 받는 ‘지구촌 재상’

유엔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SG)은 가장 권위 있는 국제기구의 최고 사령탑으로 ‘지구촌 재상(宰相)’으로도 불린다. 전 세계 192개 회원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공평무사하게 풀어 나가야 하는, 고도의 외교력이 요구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유엔 사무총장은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지명도에선 미국 대통령에 버금간다. 외교 관례상 세계 각국에서 받는 의전은 당사국 행정부 수반 수준에 맞춰지고 있어 ‘세계에서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좋은 자리’라는 말도 나온다.

유엔 헌장은 97조에서 사무총장 신분에 대해 ‘유엔 사무국의 수석행정직원으로서 기구가 필요로 하는 직원을 지휘하며 업무 수행에 있어 어떤 정부나 기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국제공무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무총장은 유엔 총회를 비롯해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신탁통치이사회 등 모든 회의에 사무국 수장 자격으로 참여하며 국제분쟁 예방을 위한 조정과 중재 역할에 독자적 정치력을 사용할 수 있다.

또 1만5000여 명의 유엔 직원에 대한 인사권과 23억 달러(약 2조2000억 원)라는 막대한 유엔 정규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연봉은 22만7253달러(약 2억2000만 원)이며 이 외에도 판공비와 관사, 경호 등을 제공받는다. 뉴욕의 총장 관저는 1년에 1달러만 내고 사용할 수 있어 사실상 공짜다.

하지만 대표적인 외화내빈(外華內貧) 자리라는 자탄도 유엔 내에서 나온다. 힘이 지배하는 현실주의 국제질서에서 실질적인 파워가 없다는 뜻이다. 사무총장의 영어 표현인 ‘SG’가 왕왕 ‘속죄양(ScapeGoat)’으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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