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바뀐 ‘선군 유령’

  • 입력 2006년 8월 4일 03시 02분


군을 최우선으로 하는 북한의 독특한 통치방식인 ‘선군(先軍)정치’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글이 또다시 친북 성향 단체 홈페이지에 게재돼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6·15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통일연대)’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남측본부’ 등의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9일에 이어 이달 2일 ‘선군정치를 지지하는 서울지역 직장인모임’이라는 새로운 단체의 이름으로 ‘선군의 덕’을 강조한 글이 올라왔다.

본보 3일자 3면 참조
▶ 친북 성향 단체 홈페이지 선군정치 찬양글 일제히 게재

한편 본보 보도 이후 통일연대는 가족의 이름이 무단 도용됐다는 반발이 있자 선군정치를 지지하는 대학생모임 명의의 글을 삭제했다.

▽누군가의 계획된 소행?=2일 오후 9시경 통일연대 등 친북 성향 단체의 홈페이지에는 일제히 ‘우리는 선군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내용은 지난달 29일 올라온 ‘세계 최강의 선군정치!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는 제목의 글과 흡사하다.

2일 글에는 선군정치를 지지하는 서울지역 직장인모임이란 단체 이름과 함께 회사원 김○○ 조○○ 한○○, 공무원 김○○ 박○○ 이○○, 교사 심○○ 이○○ 등 모두 8명의 이름이 명기돼 있다.

하지만 이들 이름이 대부분 평범해 누군가가 임의로 만들어 넣은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지난달 25일부터 나흘 간격으로 비슷한 성향의 단체 홈페이지에, 유사한 내용의 글이 올라온 점으로 미뤄 누군가가 일정한 계획을 갖고 글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글을 올린 단체 이름 역시 서울시민모임→대학생모임→서울지역 직장인모임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선군정치를 지지하는’이란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동일인 또는 동일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선군정치 지지모임은 실존하나=본보 취재진은 선군정치를 지지하는 대학생모임의 공동대표 4명의 실존 여부를 확인해 봤다.

취재 결과 고려대 김○○, 연세대 조○○, 서울대 권○○ 씨는 같은 이름의 재학생 및 졸업생이 10명 안팎이어서 확인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양대 성○○ 씨는 재학생과 졸업생을 통틀어 1명뿐이었다.

현재 장교로 복무 중인 성 씨는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학 시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등 어떤 학생운동 단체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며 “주변에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조차 없다”고 말했다.

성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이 북한을 찬양하는 데 도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가족과 상의해 경찰에 명의 도용 혐의로 고소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통일연대는 성 씨 가족의 항의를 받은 뒤 3일 오전 대학생모임 명의로 된 선군정치 찬양 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과 이달 2일 올라온 글은 계속 올려놓고 있다.

범청학련 남측본부 등 다른 단체는 지금까지 올라온 선군정치 찬양 글을 그대로 두고 있다.

▽처벌 가능할까=논란의 와중에 경찰은 속수무책인 형국이다. 경찰은 인터넷상에 올라온 이름은 무작위로 사용한 가명이거나 필명일 가능성이 높아 명의도용을 당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명의 도용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의도가 있어야 하는데 의도 입증도 쉽지 않다는 것.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글도 강제로 삭제하기 힘들다. 전기통신사업법에선 ‘전기통신사업자는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지만 통일연대나 범청학련 남측본부 등 단순히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주체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한총련은 2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옹호하기 위해 ‘미사일 특별소대’라는 선전조직을 만들었다.

미사일 특별소대는 범청학련 통일선봉대의 산하조직으로 만들어졌으며, ‘8·15통일대축전’을 앞두고 대대적인 반미(反美) 선전전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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