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 늑장 발표 왜?

  • 입력 200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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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화동 사진’의 진실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일본에서 입수해 1일 공개한 1972년 11월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당시의 ‘진짜’ 김현희 화동 사진(오른쪽 사진 ③번). 왼쪽 위 사진의 ③번은 1988년 안기부 수사결과 발표 당시 김현희라고 주장했던 인물이었지만 이번 진실위 조사 결과 ‘가짜’임이 드러났다. 왼쪽 아래 사진의 ③번 인물은 1990년 일본인 하기와라 료가 자신의 저서 ‘서울과 평양’에서 공개한 김현희로 이날 국정원이 발표한 사진과 일치한다. 사진 제공 국정원 진실위
김현희 ‘화동 사진’의 진실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일본에서 입수해 1일 공개한 1972년 11월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당시의 ‘진짜’ 김현희 화동 사진(오른쪽 사진 ③번). 왼쪽 위 사진의 ③번은 1988년 안기부 수사결과 발표 당시 김현희라고 주장했던 인물이었지만 이번 진실위 조사 결과 ‘가짜’임이 드러났다. 왼쪽 아래 사진의 ③번 인물은 1990년 일본인 하기와라 료가 자신의 저서 ‘서울과 평양’에서 공개한 김현희로 이날 국정원이 발표한 사진과 일치한다. 사진 제공 국정원 진실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당초 지난주로 예정됐던 KAL기 사건과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의 발표 시기를 1일로 늦춘 것은 지난달 27, 28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진실위 관계자는 “미사일 발사로 조장된 한반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 쿠알라룸푸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부정적인 내용이 든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 대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판단해 발표를 미뤘다”고 말했다.

진실위가 선정한 7대 우선 조사 대상 사건 가운데 유일하게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김대중(DJ) 납치사건’도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정치적인 고려 탓에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면 일본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일본 정부는 진실위가 정부 책임을 인정하면 즉시 재조사를 포함한 대응방침을 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 측은 김 전 대통령을 피해자 자격으로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비공식적인 채널로 DJ 납치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늦춰 달라고 요청했고 진실위가 수용했다는 것.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핵심 증인인 김현희 씨의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발표를 잠시 늦춘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발표와 관련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수사차장보였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사건의 실체와 내용, 그 증거물을 보면 명백한 간첩사건인데도 의혹이 있는 양 발표했다”며 “진실위가 애초부터 나를 겨냥했음을 자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과거사위 조사 결론은▼

KAL기 폭파사건 “조작 아니지만 정략 이용”
조선노동당 사건 “충분한 증거없이 부풀려”

1987년 11월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발사건은 일각의 의혹 제기와 달리 북한 특수공작원인 김현희와 김승일 씨가 저지른 것이며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사전인지설이나 기획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1992년 10월 안기부가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사건이라고 발표했던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도 당시 노태우 정권의 기획·조작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시 수사 결과 발표의 기본 내용은 모두 사실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1일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KAL기 사건과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폭파 조작설은 허구”=진실위는 KAL기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보유문서 418건 12만8000여 쪽과 91명에 이르는 관련자 면담을 토대로 각종 출판물과 방송 등에서 제기한 350여 항목의 여러 의혹 사항을 면밀히 검토했지만 대부분 근거 없는 ‘의혹’이었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안기부의 자작극이란 주장에 대해 “안기부 직원이 탑승했거나 폭탄으로 의심되는 물건을 비행기에 실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사실무근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1988년 1월 수사결과 발표 당시 공개했던 김현희 씨의 ‘화동(花童) 사진’은 김 씨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위는 이날 1972년 11월 평양 남북조절위원회에 김 씨가 화동으로 참석한 것을 보여 주는 새 사진을 공개하며 “안기부 사진이 변조됐다”고 설명했다.

또 진실위는 안기부가 KAL기 사건 직후인 12월 2일 대북 경각심과 안보의식을 고취해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대선 분위기를 만들 목적으로 이른바 ‘무지개 공작’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러나 이날 진실위의 발표는 KAL기 사건 의혹을 밝힐 열쇠를 쥐고 있는 김현희 씨가 진실위의 10여 차례 면담 요청을 거부하는 바람에 의혹을 깨끗이 털어 내지는 못했다. 김 씨는 “국정원이 KAL기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며 신변보장 약속을 어긴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안사건을 정략적으로 활용”=1992년 10월 안기부가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 간첩 사건으로 발표한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도 의도적인 조작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의 총책격인 간첩 이선실은 월북한 제주 출신 ‘이화선’으로 이선화, 신순녀 등의 이름으로 한국에서 10여 년 동안 활동한 실존 인물로 확인됐다.

이선실은 1991년 강화도를 통해 북으로 돌아갔으며, 2000년 8월 사망해 평양 근교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하지만 진실위는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은 증거가 부족한데도 조국통일애국전선, 애국동맹, 중부지역당 등 조직적인 관계가 없는 3개 사건을 결합해 의도적으로 부풀리는 등 대통령 선거를 맞아 정략적으로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진실위는 이 밖에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에 연루된 김낙중 씨가 36년간 암약한 고정간첩이었다는 당시 안기부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발표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이 설 기자 snow@donga.com

:KAL기 사건:

1987년 11월 29일 승객 등 115명을 태운 KAL 858기가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 당시 정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김현희 김승일 씨에 의한 폭탄테러로 결론 내렸다.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1992년 10월 북한의 지령에 따라 남한에 지하당을 구축했다는 것으로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간첩사건으로 불렸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김낙중 간첩망’, ‘손병선 간첩망’, 황인오 씨를 책임자로 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등 3개 간첩망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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