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관이 美정책실패 말하면 안되나”

  • 입력 2006년 7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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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사진) 대통령이 25일 “미사일 발사로 미국이 가장 큰 실패를 했다”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적극 옹호해 파문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한국 장관이 ‘그 정책은 미국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하면 안 되느냐”며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한국의 각료들은 국회에 가서 혼이 나야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이 장관은 23일 SBS TV에 출연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미국이 가장 큰 실패를 했다”고 말했다가 24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에게서 집중 비판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장관들은 (의원들에게) ‘그러면 북한 목조르기라도 하자는 말씀입니까’ ‘지금 우리가 북한의 목을 졸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은 일절 오류가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의 오류에 대해 한국은 일절 말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문)하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이 장관을 옹호하는 형식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북한 미사일 관련 한미 공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6일 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의구심을 자아냈고, 그 사이 청와대 관계자들이 일본의 대응을 ‘야단법석’이라고 비난해 일본 정부 수뇌부의 반발을 불러왔다.

노 대통령은 미사일 발사 6일 만인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 등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론에 대해 “물러서려야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고,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선 ‘선참후계’(先斬後啓·일단 처형하고 추후에 보고함)라고 꼬집어 한미일 공조에 역행한다는 우려를 낳았다.

노 대통령은 19일 안보관계 장관회의에서도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일각의 움직임들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미일의 대응에 우려를 표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소식통은 “대통령의 발언과 장관 발언의 무게는 하늘과 땅 차”라며 “대통령이 장관의 부적절한 외교적 발언을 두둔하고 나서는 바람에 한미동맹이 흔들려 동북아 내에서 한국의 입지가 불안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야는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부적절한 언급”이라며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의 한 비상대책위원은 “도와주려는 국회하고 왜 저렇게 각을 세우는지 모르겠다”며 “(이 장관을 옹호한 대통령의 발언은) 민감한 시기에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골목에서 초등학생들이 싸움하는 수준으로 정말 한심하다”고 꼬집었고, 박진 의원은 “최고통수권자가 외교관계와 국익을 손상시키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대통령 특유의 ‘오기 발언’이다. 국회 본연의 역할을 모르는 것이냐”고 지적했고,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대미안보 관련 정책을 이렇게 순진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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