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北압박 바람 좀 빼자”… 美 “더 이상 못참아”

  • 입력 2006년 7월 2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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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北압박 바람 좀 빼자” 美에 제동▼

노무현 대통령이 21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긴급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 문제에 대해 협의한 것은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대북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이날 오후 7시부터 30분간 진행된 노 대통령과 후 주석의 전화통화는 노 대통령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양 정상의 전화통화는 2003년 5, 8월에 이어 세 번째다.

▽한중 연합전선으로 미국 설득?=이날 정상 간 통화 일정은 급하게 잡혔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날 2000년 이전의 대북 경제제재 복원 천명과 확산방지구상(PSI) 강화에 이어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 필요성까지 언급했다.

게다가 미국 의회에서는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의 상징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북한 군사모험주의의 돈줄로 인식하면서 대북 경제제재와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이런 국면에서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 정상은 이날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만 참여하는 5자회담을 강행하자는 미국의 의견엔 동조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이번 통화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문 채택이후 긴장이 고조되니까 잠시 바람을 빼자는 것”이라면서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5자회담에 대한 한미 간 이견=한미 양국은 5자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할 것인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 왔다. 5자회담 개최를 제안한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5자회담을 열어 대북 압박 카드를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5자회담을 열더라도 대북 제재안을 논의해선 안 된다고 미국에 맞서 왔다.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할 경우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카드를 5자회담 참여국들이 공동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중국도 5자회담에 대해 우리 정부와 비슷한 방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북한을 제외한 채 5자회담을 개최하는 것 자체가 6자회담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고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후 주석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후 주석은 그래도 미국이 한국이 하는 말은 듣는 것 아니냐면서 5자회담을 강행하지 말도록 미국을 설득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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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더 이상 못참아” 압박 수위 높여▼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19일(현지 시간)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이어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은 앞으로 미 행정부가 취할 새로운 대북정책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기원후(AD)와 기원전(BC)을 나누듯이 미국의 대북정책은 미사일 발사를 기준으로 확연히 구분될 것”이라는 워싱턴의 한 고위 외교소식통의 진단처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후 여러 갈래로 논의돼 온 미국 대북정책의 핵심을 소개한 것이다.

‘미사일 발사 이후 시대’의 미국 대북정책 특징은 기존 대북정책에 비해 매우 강경하며 종합적이라는 점이다.

▽회담 복귀 안 하면 강력한 대북 추가 제재=힐 차관보는 “안보리 결의에 도전한 북한이 추가로 힘을 과시할 가능성이 있지만 핵 실험을 할 경우 ‘극도로 엄중하게(with extreme seriousness)’ 다뤄질 것”이라고 금지선을 강력히 경고했다.

또 힐 차관보는 “북한이 미사일을 이미 발사한 만큼 그에 상응해 여러 추가적인 경제 외교적 조치와 비확산 조치의 진전을 고려 중”이라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활동의 지속적 강화, 대북 금융제재 유지 등을 예시했다.

그는 이어 “대북정책에 인내는 없으며, 압박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압박은 경제 압박을 말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중국의 전략전환 촉구=힐 차관보는 미국은 한반도에서 정치적 관계 변화에 따른 전략적 이득을 취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면서 중국을 안심시키는 한편, “중국도 기존의 대북관계를 그대로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북한에 변화를 강요할(compel)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 인권문제 공식 이슈화=힐 차관보는 북한이 요구하는 개별 양자협상에 대한 거부 방침을 거듭 확인하면서 “우리는 북측에 앞으로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에서 인권문제 논의가 필수불가결한 일부임을 분명히 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무부 등 관계기관이 북한인권법에 따라 탈북자를 보호하고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자금집행 계획을 종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권 교체 대신 정권 행태의 변화로 개념 정리=힐 차관보는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 정권 교체(regime change)인가”라는 질문에 “북한 정권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 주민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 정책의 목표는 ‘정권 행태(regime behavior)의 변화’”라고 규정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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