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빼고 日만 성토…한국정부 논점이 흐려졌다”

  • 입력 2006년 7월 12일 2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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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사태를 풀어가는 한국 정부의 접근법은 2006년 한국외교의 특징적 현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미사일 위기국면의 논점은 흐려졌고, 한미일 공조구도는 사라졌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이 지구촌 주류국가를 관통하는 사고체계와 무관하게 '우리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이 지적한 '오지(奧地) 사고'를 연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김 원장은 "오지사고를 극복 못하면 국익이 강조돼야 할 외교정책에서 자주와 같은 이데올로기가 앞서고, 중세 외교로 회귀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잘못 형성된 전선=청와대가 11일 일본 고위관료의 선제공격 필요성 발언에 발끈했고, 한국 언론이 이를 집중보도한 것을 놓고 워싱턴 외교가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못했다. "본질은 북한미사일이 촉발한 위기상황인데, 부수적으로 거론된 발언으로 전선이 잘못 옮겨갔다"는 것이다. 달을 가리켰건만, 달(본질) 대신 손가락(외양)을 바라본다는 고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11일 한국의 젊은 세대의 안보불감증을 한 목소리로 다뤘다. "오프사이드 판정문제를 놓고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에 분노에 찬 이메일이 420만 통이 날아들었지만, 북한 미사일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은 들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성급한 입장표명=일본이 주도한 안보리 대북 결의안에 한국이 부정적 입장을 표시한 것도 '다소 빨랐다'는 지적이 많다. 시점 상 중국의 거부감이 공표된 직후라는 점에서 중국을 방패삼아 의사표시를 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걱정이 많았다. 뉴욕 유엔무대에서는 "안보리에서 표결이 강행되고 중국이 거부권 대신 기권할 경우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 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같이 성급한 의사표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의 위조달러지폐를 놓고 공식 회견장에서 "한쪽(미국)이 주장한다고 (북한의 위조지폐 제조·유통이) 사실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대포동 2호 발사가 임박한 시점에서 "(미사일이 아닌) 인공위성일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가 망신을 자초한 일도 있다.

이런 설익은 견해표시는 "한미간 이견이 없다"는 쪽으로 입장표명이 바뀌는 일이 허다했다. '부적절한 의사표시-미국의 항의-한국의 표현수위 조절-사안의 잠복'이란 구조는 한미간 수사(修辭) 외교의 한 전형이 돼 버렸다.

▽3각 공조가 깨졌다=한국의 북한핵 해법의 기초구도는 한미일 3국의 공조를 바탕으로 중국 러시아의 협조를 얻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까지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는 의견조율의 장이었다. 그러나 이 회의가 가동을 멈춘 것은 3년이 넘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노림수와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한 미국의 '신 미일동맹'이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11일 "3국 공조의 균열의 이유를 찾자면 한국정부의 열의부족을 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불신=일본이 주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 처리가 늦춰진 것은 '유엔헌장 7조'를 원용할 것이냐에 모아진다. 42조, 51조에 무력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대목 때문이다.

그러나 유엔 무대에서는 한국을 향해 "7조를 원용하지 않은 결의안은 수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군사행동 의지 없다"는 미국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안은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미사일 체제에 법적 구속력을 갖는 '제한적 법'이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대포동 2호 발사가 실패했다면, 북한은 2차 시험발사의 유혹이 클 것이고, 미국과 일본은 그 전에 결의안을 통과시켜서 북한의 모험을 예방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또 이라크 전쟁이 현실화한 것도 16차례에 걸쳐 안보리를 통과한 대 이라크 결의안이 번번이 무시된 것이 빌미가 됐다.

▽"프랑스도 동의했다"=전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최근 "프랑스의 결의안 동의에 주목하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유엔무대에서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해 온 프랑스도 '핵무기 보유선언국의 대륙간 탄도탄(ICBM) 시험발사'가 갖는 심각성을 인식한 탓이라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가 중동보다 무기거래, 산업투자 등 이해관계가 적은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의 뜻을 더 존중한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장마르크 들라 사블리에르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는 11일 '선 의장성명 채택, 후 결의안 논의'라는 고육책을 제시했다. 월별로 바뀌는 안보리의 7월 의장국인 프랑스로서는 안보리의 단합을 중시한 선택인 것이다. 프랑스의 일간 르 피가로가 11일 고위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조급한 것보다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도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사블리에르 대사는 "다만, 의장 성명은 중국이 앞서 안보리 이사국들에게 회람시킨 것보다 강력한 것이어야 하며, 북한의 미사일발사를 '위협'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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