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욕장서 납치” 남파간첩 진술과 달라

  • 입력 2006년 6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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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잔칫상 받으세요”28년 만에 상봉한 어머니 최계월 씨를 위해 아들 김영남 씨가 29일 금강산호텔에서 팔순 잔칫상을 차렸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최 씨를 김 씨가 들어 안고 잔칫상 앞 의자로 모시고 있다. 금강산=이훈구 기자
“팔순 잔칫상 받으세요”
28년 만에 상봉한 어머니 최계월 씨를 위해 아들 김영남 씨가 29일 금강산호텔에서 팔순 잔칫상을 차렸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탄 최 씨를 김 씨가 들어 안고 잔칫상 앞 의자로 모시고 있다. 금강산=이훈구 기자
■ 김영남씨 “돌발적 입북” 주장

‘납북고교생’ 김영남(45) 씨는 29일 28년 전 자신의 입북을 ‘돌발적 입북’이라고 표현했다. 17세의 철없는 고교생이 북한의 정치체제와 사회가 마음에 들어 선택한 ‘의거입북’이라고 강변할 수 없었던 북측으로서 가장 그럴 듯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일각에서는 “1980년 6월 충남 대천 서쪽 120마일 해상에서 뭍으로 침투하려다 체포된 뒤 귀순한 김광현(가명) 씨의 구체적인 증언이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자발적 입북으로 우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김영남 씨의 주장에 따르면 전북 군산 선유도에 함께 놀러 갔던 폭력적인 선배들의 꾸지람을 피해 바닷가 조그만 나무쪽배에 숨은 뒤 노를 젓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망망대해였다는 것. ‘로빈슨 크루소’처럼 바다를 헤매다 북한 배의 구조로 북한 남포항으로 가게 됐다는 것이 김 씨 설명의 요지다.

여자 친구들에게 빌려 준 녹음기를 찾아오라는 ‘폭력 선배’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생각에 여자 친구들이 묵고 있던 민박촌이 아닌 인적이 드문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는 설명도 했다.

하지만 남파간첩 김광현 씨는 자신이 선장이던 공작선이 선유도 해수욕장에 접근해 혼자 울고 있던 김영남 씨를 발견해 납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김광현씨는 4월 언론 인터뷰에서도 “나는 배에서 일만 했을 뿐 납치는 공작조가 하는 일이다. 난 김영남 씨 얼굴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김영남 씨를 납치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니 자식 잃은 부모에게 참 미안하다”며 납북 사실을 거듭 시인했었다. 이 같은 증언을 종합해 볼 때에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구조됐다는 김영남 씨의 이날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영남 씨가 이날 밝힌 입북 후 행적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김 씨는 “점차 북쪽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굳어진 마음도 풀어지고, 공부할 수 있다고 해서 마음에 들었고, 여기서 공부하고 (고향에) 가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던 것이 계기가 돼 28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고교 1년생으로 선배들의 폭력이 무서워 쪽배에 몸을 숨길 정도로 심약했던 김 씨가 당장 집으로 보내 달라고 하지 않고 북에 머무르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석연치 않다.

김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북측으로서는 미성년자를 구조했으면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남측에 통보한 뒤 송환하려 하지 않았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튼 북측 당국은 “모든 의혹을 털고 가겠다”고 했으나 김영남 씨에 대한 ‘납북이냐 입북이냐’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납북자 김영남 씨의 주장과 기존 조사 결과 및 추정 비교
쟁점한국과 일본정부 등의 조사 결과 및 추정김 씨의 주장
납북경위선유도 모래사장에서 북한 공작선에 의해 납치됨바다에서 표류 중 북측 선박에 의해 구조됨, 돌발적 입북
직업 및 경력대남공작기관인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한 엘리트“특수부문, 통일부문 관련 사업에 종사”
생활상최근 수개월간 가택연금 “노동당의 품에 안겨 행복, 북쪽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우”
요코타 메구미 사망 경위일본 측 메구미의 생존 가능성 제기어렸을 때부터 사고로 뇌를 많이 다쳐 우울증 정신병 앓다 1994년 4월 병원에서 자살
메구미 유골의 진위일본 정부 DNA 조사 통해 가짜 판명유골을 직접 일본 측에 전달, 가짜 유골 주장은 인권유린

■ 김영남씨 기자회견 이모저모

김영남 씨는 29일 전처인 요코타 메구미의 사망과 유골 조작 의혹을 단호하게 부인했다. 전날 어머니 최계월(82) 씨와 누나 영자(48) 씨를 상봉할 때 온화한 미소를 짓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김 씨는 “(2004년 11월) 일본 측 대표단장에게 ‘(유골을) 메구미 부모에게 전달하고 (외부에) 공표하지 않겠다’는 자필 확인서도 받았다”면서 일본이 ‘졸렬하고 유치한 감정장난’을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메구미와의 만남에 대해 “특수부문 사업상의 필요로 1980년대 초까지 (메구미에게서) 일본어를 배우면서 이성적으로 가까워졌고 결혼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메구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혜경 씨에 대해 “원래 본명은 은경이고, 어렸을 때 이름이 혜경”이라고 설명했다. 혜경 씨를 일본으로 보내 달라는 일본 측 요구에 대해선 “은경이는 메구미의 딸이자 나의 딸이다. 일본 당국이 취하는 태도로 볼 때 보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스스로도 가지 않겠다고 한다”고 일축했다.

회견 도중 김 씨는 “당의 품에 안겨 정말 행복하게 살아왔다”며 북한 체제 선전에도 열을 올렸다. 북측이 자신을 특별대우해 김정일정치대학의 전신인 금성정치대학에서 무료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장인은 평양시 인민위 부위원장(남측의 서울시 부시장에 해당)이라는 것.

한편 김 씨는 이날 금강산호텔 2층에 마련된 별도의 방에서 어머니 최 씨를 위한 팔순 잔칫상을 마련했다. 김 씨 가족은 최 씨에게 미국제 휠체어, 90년 된 조선산삼, 비단 옷감, 고려청자 도자기 세트 등을 선물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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