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화염’ 北 안경호 발언 파문확산]北, 되레 큰소리

  • 입력 2006년 6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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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들어서는 안경호 北단장 15일 광주 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 민족통일대회에서 백낙청 남측 대회장(앞줄 왼쪽)과 안경호 북측 대회장이 나란히 입장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행사장 들어서는 안경호 北단장 15일 광주 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 민족통일대회에서 백낙청 남측 대회장(앞줄 왼쪽)과 안경호 북측 대회장이 나란히 입장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북한이 노동당의 전위 통일전선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통해 한나라당 집권 반대를 주장하는 ‘위협 발언’을 쏟아낸 것은 남한의 정치 상황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는 데 따른 초조함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이번 발언은 대북 지원 및 교류 확대를 추진하는 남한 정부의 입지를 축소하는 파장을 부를 가능성도 있다.

▽초조한 북한=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한나라당 집권 반대 발언을 하기 직전에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 발사 준비에 들어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측은 미국이 금융제재를 가하고 핵 및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6자회담이 장기간 열리지 않게 되자 6자회담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경수로 건설 등 경제난 타개 방안 대신 미국과의 직접 거래를 통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미사일 위협’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북한의 상황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얘기다.

미국과의 관계도 이처럼 불편한 터에 한나라당이 5·31지방선거에서 압승하는 등 남한 상황마저 자신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튀는 강경 발언’을 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돌출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하지만 북한의 한나라당 집권 반대 발언은 당장 광주에서 열리고 있는 6·15남북공동선언 6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등 역풍을 맞고 있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북측이 평소 주장한 것처럼 정말 6·15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한나라당 집권 반대 발언을 한 것은 전술적으로 큰 실수”라고 말했다.

▽정부 여당에 오히려 부담=북측도 뒤늦게 한나라당 집권 반대 발언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5일 열린우리당이 나서 북측의 발언에 유감을 표명하고 김지하 시인과 종교계 인사 등 10여 명이 조평통 안경호 서기국장에게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하는 글을 보내는 등 남한 각계에서 이번 발언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고 있는 현실을 깨달은 듯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온 나라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것’이라는 강경 발언을 퍼부은 당사자인 안 서기국장부터 자신감이 없어진 듯한 모습이다. 광주에서 열리는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석하고 있는 안 서기국장과 접촉한 우리 측 행사 관계자는 이날 오후 “안 서기국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고 말수도 적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서기국장은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거나 잘못을 시인하진 않았다.

정부 내에선 이번 기회에 남측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북측의 의사를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이날 광주에서 안 서기국장을 만나 남한 정치에 대해 ‘중립’을 지켜 달라고 요청하긴 했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의 한 간부급 공무원은 “장기적으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북측에 강하게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측으로부터 분명한 해명 내지 사과를 받아내지 못할 경우 앞으로 정부가 대북 투자나 지원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북한과 한통속’이란 비난을 받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가뜩이나 대북정책 여론 나쁜데… 시간 끌수록 악재”

與 “北 정치관여 말라” 발빠른 선긋기

열린우리당이 15일 조평통 안경호 서기국장의 ‘전쟁 화염’ 발언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유감을 표시한 것은 차제에 일정한 선을 그어놓지 않으면 두고두고 정치적 악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 서기국장의 발언 이전부터 지방선거에서의 한나라당 반대를 선동하는 등 내정 개입을 노골화해 온 북한의 발언을 묵과할 경우 자칫 열린우리당이 북한과 모종의 연대를 갖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게 당내의 일반론이다.

대북지원에 대해 ‘퍼주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등 대북정책을 둘러싼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도 열린우리당을 자극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방선거 직전인 5월 9일 몽골에서 북한에 대한 ‘조건 없는 지원’을 밝힌 데 대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50% 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지방선거 참패 원인을 짚어보자는 취지로 열린 초선 의원 토론회에서 오제세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친북반미’가 아니란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하는 등 대북정책 노선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신학용 의원은 “지역 유권자들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6·25는 북침’이라고 발언한 강정구 교수를 감싸는 이유가 뭐냐고 묻더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북한을 강하게 자극할 경우 기존의 대북정책이 완전히 틀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우상호 대변인을 통해 “남쪽의 정치는 남쪽의 정당 사이에서 활발히 견제와 균형을 통해 이뤄지고, 그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남쪽의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했을 뿐 개별적인 대북 비판은 자제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南이 北정권교체 주장했다면 어떠했겠는가”

■ 각계인사 10명이 안경호에게 보낸 공개서한(요약)

‘6·15 정신의 의제는 상호존중 내정불간섭이다’

안경호 선생의 발언에 한마디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상호존중의 자세와 내정불간섭의 원칙이 전제되지 않고서 지난 60여 년간 다른 사상과 체제 속에서 살아 온 남북이 교류협력 화해공존 평화통일을 이루어 갈 수 있겠는가.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조세 부담에 기꺼이 응하고 있는 우리 국민이다. 교류협력 화해공존을 확대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 여야 정치권, 우리 국민이 남측 내정에 간섭하고 분열을 부추기는 안 선생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한국사회 일각에서 북측의 이른바 체제 변혁을 주장했지만 한국의 여야 정치권은 그 같은 논의가 비현실적이고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남측의 정부나 여야 정치권이 귀측의 정권이 교체되어야 한다거나, 귀측의 당이나 군 같은 특수집단의 존재를 비방하거나 무시하는 내정간섭과 분열조장의 발언을 공표했다면 귀측의 반응은 어떠했겠는가.

그런 뜻에서 안 선생의 발언은 6·15공동선언 정신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안 선생께서는 당연히 문제된 발언을 취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해 주기 바란다.

다음에 어떤 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남북의 교류협력 평화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귀측도 협력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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