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지도자 빗대 위기탈출 시도

  • 입력 2006년 6월 6일 03시 03분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역사 속의 지도자를 빗대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임기 초반 그는 사석에서 “정치적으로 성공한 링컨을 닮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참패 뒤인 2일 정책홍보토론회에선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의 선거 참패를 거론하며 “한두 번 선거에 패배했다고 해서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 닮고 싶었던 링컨

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상형으로 삼은 외국 지도자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었다. 2001년 말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책까지 펴냈다.

노 대통령과 링컨은 모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다. 정치적 실패를 거듭했지만 대통령이 된 것, 특히 두 사람 모두 ‘16대 대통령’이라는 점도 같다.

노 대통령은 ‘노무현이 만난 링컨’ 서문에서 “링컨은 남과 북을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남북통합을 이뤄낸 링컨의 리더십에 지역구도 타파를 내건 자신의 리더십을 투영시킨 것으로 보인다.

○ 탄핵 전후 심취한 드골

노 대통령은 2004년 3월 탄핵소추로 대통령 직무정지에 들어갔을 때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이란 책에 빠졌다. 대통령직 복귀 후 이 책을 쓴 외교통상부의 이주흠(현 주미얀마 대사) 외무관을 새로 만든 대통령리더십비서관에 전격 발탁했다.

1958년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드골은 알제리 독립, 대통령 직선제 문제 등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국가 중대사를 관철하기 위해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노 대통령도 2003년 말 측근비리가 터졌을 때 국민을 향해 직접 재신임을 묻는 방식으로 위기정국 돌파를 시도했으며, 2004년 탄핵위기 때는 정면 돌파를 통해 결국 여대야소 국회를 이뤘다.

프랑스에 대해 잘 아는 한 고위 공무원은 “드골 대통령은 ‘위대한 프랑스’ 건설을 표방하며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위상을 높여 프랑스인의 자긍심을 크게 높인 인물”이라며 “승부사적인 측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부러운 고이즈미와 슈뢰더

노 대통령이 지난해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가장 많이 거론한 인물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였다. 두 사람은 정치적 위기에 몰렸을 때 자신의 진퇴를 걸고 의회 해산 및 총선 실시라는 승부수를 던졌던 게 공통점.

노 대통령은 ‘임기 단축’까지 거론하며 대연정에 강한 집착을 보였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자 두 지도자에게 부러움을 표시한 것.

그러나 여권의 한 인사는 “의회 해산과 총선 실시라는 승부수는 내각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대통령제의 중심에 있는 노 대통령이 너무 이상주의적으로 접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당대에 실패한 혁명가 정도전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조선조 개국공신인 정도전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정도전은 이방원(태종)에게 패했지만 조선 500년을 지배한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이다. 당장 권력의 승패가 아니라 제도와 문화, 이념 등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2일 정책홍보토론회에서 “제도와 문화, 의식, 정치구조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노 대통령이 특히 정도전에 관해 주로 언급한 시기는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급락한 지난해 말 이후. 일각에서는 이 시기를 즈음해 노 대통령이 ‘당대의 평가’보다 ‘역사의 평가’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업적은 뒷날 자연스럽게 사가(史家)들이 평가할 일이지, 지도자가 미리부터 ‘역사의 평가’를 중시하다간 자칫 실정(失政)과 독선을 합리화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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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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