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 의사 지난달 북측에 전달=정부 고위 당국자는 1일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의사를 지난달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지난달 초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올해 4월 중순이나 하순경 경의선 열차를 타고 평양에 가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나겠다’는 구상을 전달받은 뒤 이를 북측에 전했다”며 “북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DJ의 4월 방북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8·15민족대축전 당시 서울을 방문했던 김기남(金基南·노동당 비서) 북측 당국 대표단장은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이던 DJ를 문안하면서 김 위원장의 북한 초청 의사를 재확인한 바 있다. 특히 DJ가 4월 ‘중·하순’이라고 시점까지 명기한 것으로 볼 때 사전에 북측과 물밑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남북정상회담 주선 예상=DJ가 방북하면 김 위원장과의 회담이 성사될 것이 확실하다.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DJ는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할 것으로 보인다. DJ는 1일자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4월 방북 추진 사실을 공개하면서 “내가 정부대표도 아니고, 중요한 결정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김 위원장 두 분이 만나서 합의할 일이다. 나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정상회담 주선 의사를 밝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DJ의 인생역정을 볼 때 스스로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했던)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DJ는 노 대통령의 특사?=정부 당국자는 “김 전 대통령은 민간인 자격으로 방북을 추진 중이다. 방북을 추진하는 주체도 김 전 대통령 쪽이다”며 노 대통령 특사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DJ와 북측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DJ가 구상 중인 방북 의제도 남북정상회담 등과 맞물려 있는 점을 감안할 때 DJ가 사실상 노 대통령의 특사 활동을 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실제 노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 핵심 인사들이 지난해 말부터 줄곧 DJ의 방북을 권유해 왔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와 정동영(鄭東泳) 당시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DJ에게 방북을 권유했다. 여권의 방북 권유→DJ의 방북 추진 발표→정부의 방북 중개 등의 순서로 볼 때 DJ가 노 대통령의 모종의 메시지를 갖고 방북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개헌 논의의 시발점?=DJ는 방북이 성사되면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을 이행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DJ와 김 위원장은 2000년 6·15정상회담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공통성이 있으며 통일을 이 방향으로 추진하자”고 합의했다.
두 안의 공통된 골자는 남북한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 상태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남북 통합의 제도화를 이루어나가는 것.
물론 이를 실현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따라서 DJ의 방북을 계기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경우 개헌 문제가 정치권의 핵으로 부상하며 남한 내 정치지형을 둘로 쪼개놓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지방선거 이후 개헌 논의 가능성을 흘려온 여권과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 핵문제도 해결이 안 됐고, 평화체제 구축 논의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 통합의 논의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다.
▽DJ 방북은 지방선거용?=DJ가 ‘4월 방북’을 추진 중인 데 대해 야당에선 5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DJ가 지방선거에서 여권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해줄 줄 알면서도 ‘4월 방북’을 추진하는 데 대해 정치권에서는 DJ 시절 국가정보원 도청 사건 등으로 소원해진 노 대통령과 DJ의 관계가 복원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여권의 한 인사는 “김 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이 지나야 DJ의 방북 제안에 대한 북측의 반응이 나올 것”이라며 “그 다음에 구체적인 의제와 일정 등을 논의하다 보면 결국 4월은 돼야 방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감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제균 기자 phark@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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