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기의 盧대통령과 열린우리당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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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재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사퇴하고, 일부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를 정면공격하고 나섬으로써 여권(與圈)이 심각한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어제 당 중앙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의원들은 대통령의 연정(聯政) 주장이 선거 참패의 한 원인이었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이 정치에 관여하지 말 것과 청와대, 당, 정부의 전면쇄신을 요구했다. 대통령이 “당은 동요하지 말라”고 말한 지 하루 만에 대통령의 뜻과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대통령은 즉각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침묵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국면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 재선거 표심(票心)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불신과 실망의 분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 연석회의에서 의원들이 쏟아낸 대통령에 대한 불만에도 민심이 상당부분 반영돼 있다. 이들은 “대통령이 민생에는 신경 쓰지 않고 연정론이나 얘기한 것이 선거 패배의 근본 원인”이라면서 “대통령은 개헌,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문제에 더는 관여하지 말고 민생에 전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심지어 “국민이 정서적으로 대통령의 발언을 품위 없고 경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대통령은 오류가 없는 신(神)이냐”는 등 야당에서나 나올 법한 말까지 쏟아졌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새삼스러운 내용도 아니다. 다수 국민 사이에서 수도 없이 터져 나온 얘기들이다. 연정만 하더라도, 위헌 요소가 있고 현실적으로 성사될 수 없으니 단념하고 민의(民意)를 수렴해 국정을 정상화하라는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가. 그런데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정치환경이 사뭇 다른 나라의 사례까지 억지로 끌어들이며 오기(傲氣)를 부렸다. 또 산처럼 쌓인 국정과제들을 뒷전으로 물리고는 ‘지역구도 타파’가 나라의 최대 과제라고 강변했다.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온통 ‘기득권 세력’의 음모인 양 몰아갔다. 국정의 내용을 견실하게 만들기보다는 건전한 지적까지도 역공하는 일에 청와대, 국정홍보처 등 정부조직의 힘을 소진하다시피 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취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원활한 국회 운영을 위해 대화하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 국회에서 질문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면박을 주고, 감정적인 언사(言辭)로 야당을 자극하기 일쑤였다. 그런 총리를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칭찬하기 바빴으니 국민의 눈에 두 사람이 어떻게 비쳤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놓고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개혁이니 진보니 해 가며 수많은 말과 정책을 쏟아냈지만 혼란만 부추기고 국가잠재력만 위축시켜 왔음을 인정하고 더는 그런 식으로 국정을 끌고 가지 않겠다고 했어야 했다.

열린우리당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하자는 대로 ‘청창당수(靑唱黨隨)’해 놓고 이제 와서 책임을 떠넘기는 자세는 비겁하다. “대통령의 연정론 때문에 졌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연정론이 나왔을 때 누구 한 사람 딱 부러지게 반대한 적이 있는가. 대통령에게 고언(苦言)다운 고언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 때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문제 조항 개정, 보완 입법’이라는 당론을 한순간에 버렸다.

이제라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코드’를 버리고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자신들만이 ‘시대정신’의 구현자, 개혁의 전도사라는 허위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런 오만이 눈과 귀를 막아 독선과 아집을 병적(病的)인 상태로 만들었다. 여권 일각에서는 벌써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 ‘포스트 대연정 구상’ 같은 정치적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바른 해법도 아닐뿐더러 국민적 저항이 가져올 또 한번의 혼란과 분열이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소리에서 정도(正道)를 찾아 국정을 안정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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