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다시 ‘핵 줄다리기’]6자회담 뒷얘기들

  • 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1분


19일 끝난 2단계 4차 6자회담은 많은 난관과 우여곡절 끝에 공동성명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한미 수석대표가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회담이 중단될 국면에 처하기도 했다.

정부는 13일 시작된 회담에서 당초부터 공동성명에 북한이 요구하는 ‘경수로 건설’ 관련 문구를 넣으려 했지만 미국이 완강히 반대해 초반에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15일 북-미 양자협의 개최 전 우리 측 수석대표인 송민순(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기자들에게 “북한이 장래에 경수로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경수로 건설 문제를 안건으로 논의하자는 첫 제안이었지만 미국과는 사전 협의가 없었다.

이날 송 차관보와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이 문제로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몇 년 전 폴란드 주재 대사로 함께 근무하던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온 사이로 힐 차관보가 송 차관보에게 얼굴을 붉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힐 차관보는 외교력과 미국 정부에 대한 설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한국 대표단은 회담 기간에 북한 대표단에 “힐 같은 친구를 도와야지, 이런 사람이 아닌 다른 강경파하고 협상할 거냐”고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힐 차관보에 대해선 “가장 비싼 외교가 가장 싼 전쟁보다 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평이 회담장 주변에서 나돌았다.

회담 기간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은 미국 뉴욕 유엔총회의 뒷무대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3번 만나고, 4번 통화를 했다. 경수로 제공 문제가 들어간 중국의 4차 초안 수정본을 받아들일 것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17일엔 회담 자체가 아예 중단될 뻔한 일도 있다. 그 전날 중국이 제안한 4차 초안 수정본에 대해 일부 회담 참가국 대표부가 본국에서 훈령을 받지 못해 의견을 내놓지 못하자 “회담을 그만하자”는 의견이 다른 참가국에서 제기됐던 것. 다급해진 한국 대표단이 부랴부랴 나서 “기다려서 결론을 보자”며 만류해 간신히 회담을 다시 진행할 수 있었다.

한편 19일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이 기자회견을 할 때 힐 차관보가 늦게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힐 차관보는 비행기 일정 때문에 서둘러 공항으로 가다가 중국 측이 “당신이 부재한 1초가 당신이 있는 1년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기자회견장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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