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행담도수사 영장없는 자료제출 거부하라” 파문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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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행담도 개발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영장 없이 자료제출을 요구할 경우 응하지 말도록 정부 부처에 지시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지시와 발언은 권력 핵심 인사의 개입 사실이 드러난 이 사건 수사에 ‘외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총리는 17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5부(府) 요인 부부동반 만찬에서 “검찰이 상자째 서류를 가져가 공무원들이 일하는 데 지장을 받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어 “앞으로 영장 없이 공문서를 가져가는 것에 응하지 말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박한철(朴漢徹) 3차장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은 광범위하게 수사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법 절차를 어기며 수사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총리의 ‘자료 제출 불응’ 지시가 법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사소송법 제218조는 압수수색 영장이 없더라도 검찰이 임의제출 형식으로 서류나 물품을 제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河昌佑) 공보이사는 “이 총리의 지시와 발언은 행담도 사건에 관련된 비리 혐의자를 옹호하고 실체적 진실을 감추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총리가 불법 부추기나”

한국도로공사의 행담도 개발 투자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해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의 지시와 발언은 검찰 수사에 대한 직접적인 ‘외압’과 ‘방해’로 비칠 수 있다.

과거에도 권력층 수사에 대해 정부와 권력 핵심 인사가 불만을 나타낸 적은 있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적은 없었다고 일선 검사들은 말한다.

▽연이은 여권의 외압성 발언=이 총리는 17일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5부(府)요인 만찬에서 검찰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말 것을 각 부처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영장이 없는 경우’라는 조건을 달았으나 정부 기관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는 그동안 법과 관례에 따라 영장 없이 이뤄져 왔다.

한 중견 검사는 “정부 부처가 자료 제출을 앞장서 거부하면 일반 기업이나 시민도 따라서 거부하지 않겠느냐”며 “총리가 앞장서 불법을 부추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정찬용(鄭燦龍) 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 문정인(文正仁) 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정태인(鄭泰仁)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 등 권력 핵심이 개입한 것으로 확인된 상황. 따라서 당사자 쪽인 이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도 이날 만찬에서 “어떤 기업에서는 (검찰이) 지난 5년간의 서류를 가져갔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기업의 의욕을 저하해선 안 된다”고 가세했다.

▽곤혹스러운 수사팀=행담도 개발은 1995년 시작돼 10년 동안 진행돼 온 사업이다. 한국도로공사 등 사업 주체들은 진행 단계마다 대형 로펌(법률회사)에 자문을 했다. 또 사업 자체가 복잡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관련 서류가 다른 사건보다 훨씬 더 많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에 착수한 지 한 달이 됐지만 아직 사건의 실체 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력 핵심이 관련된 데다 이해관계자가 많아 최대한 신중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필요한 자료는 압수수색 대신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고 있다는 것.

검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아직 행정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관련 인물들의 자료 폐기 가능성이 제기돼 도로공사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압수수색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 이어지자 검찰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서울중앙지검 박한철(朴漢徹) 3차장은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사건 수사와 행담도 사건 수사 모두 신중히 진행했거나 하고 있다”며 “과거처럼 컴퓨터 본체를 통째로 들고 오는 식의 압수수색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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