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경비정 대치]‘동해 줄다리기’ 양국관계 축소판

  • 입력 2005년 6월 2일 03시 28분


코멘트
20일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한국과 정보공유 불가’ 발언으로 가뜩이나 한일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1일에는 동해상에서 한일 당국 간에 신풍호를 사이에 둔 관할권 다툼이 발생했다.

어선의 관할권 문제를 놓고 양국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말 그대로 ‘줄다리기’를 벌인 초유의 사태엔 현재의 한일관계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해상 대치의 이면에는 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국민감정을 의식한 양국의 자존심 대립도 자리 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정부는 관할권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선박과 선장이 우리 국적인 데다, 대치 현장이 우리 쪽 배타적 경제수역(EEZ)이어서 기속(旗屬)주의, 속인(屬人)주의, 속지(屬地)주의 어느 원칙으로 보더라도 한국이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또 신풍호가 불법조업을 했는지도 분명치 않고, 설사 불법 조업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 쪽에서 조사해서 응분의 조치를 취하면 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수산업법에 따르면 우리 어선이 외국에 가서 불법조업을 한 경우 처벌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신풍호가 일본 측 EEZ에서 공무집행 중이던 일본 보안관을 태운 채 도주한 데 대해서는 위법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일본이 자국 EEZ에서의 불법 조업을 문제 삼으며 추적권을 주장하는 것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해웅(丁海雄) 외교통상부 조약국장은 “양국 관할권이 경합하는 상황인 데다 이에 대한 국제법상의 명확한 원칙이 없어 법적인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일이 한일관계를 더욱 꼬이게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일본 측 조치에 상당 부분 이해를 표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이 마침 방한 중인 아이사와 이치로(逢澤一郞) 일본 외무성 부상을 만나 “해당 선박에 문제가 있으면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니 일단 일본 측 선박은 돌아가 달라”고 정중히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정부도 한일관계를 염려하기는 마찬가지. 아이사와 부상은 “본 사안은 일본법령과 국제법에 따라 처리돼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장관 말씀을 본국에 즉각 보고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해상에서의 냉엄한 대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편 일본 측이 신풍호를 끌고 가려고 하는 데는 불법조업에 내리는 벌금형과 관련해 담보물을 확보해 두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다고 정부 관계자는 분석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