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김원일]한반도 평화정착이 힘든 이유

  • 입력 2005년 5월 23일 0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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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주장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우리가 겪은 6·25전쟁의 교훈과 이라크가 당면한 현실에 비춰 보건대 이 땅에서 또 한번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 민족은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런데도 언제부턴가 한반도는 세계의 중심 분쟁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냉전시대에 남한은 군사정권이 장기 집권했다. 그 시절에는 타도 공산주의 구호가 우렁찼고 무력통일 논리가 팽배했다. 한 치 양보 없이 대치하던 상황에서는 역설적이게도 한반도 정세가 힘의 균형 아래 안정을 유지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세계가 탈냉전시대로 접어들고 남한에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평화와 번영을 누리자는, 좀 더 성숙한 남북관계가 성립됐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남북 지도자가 손을 맞잡았음에도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냉전시대에 비해 도를 더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 남한의 사고(思考)가 급변하고 있다. 분배가치를 중시해 가진 자들은 이익의 몫을 사회에 내놓아야 한다는 반자본주의적 논리도 힘을 얻는다. 김일성을 독립 유공자로 인정하자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다. 친북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북한 돕기에 앞장서는 현실을 상식선에서 이해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 남북은 평화 공존의 황금시대를 맞아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우리의 사고가 변한 만큼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더 빨리, 우리 사고와는 엇길로 급변하기에 한반도 평화정착이 좌불안석이다. 그러한 이유는 첫째,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부가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이 어려워진다’는 쪽으로 대북 강경론을 펼치는 데 있다. 1994년 체결된 제네바 협약이 공수표가 된 경험을 상기하며 ‘불량국가’를 믿을 수 없다는 고자세다.

둘째, 미국과 일본의 보수 우익화와 굳건한 동맹체제의 재강화에 있다. 미국의 핵 그늘에서 아양 떠는 일본이 배알도 없는 민족으로 비칠 법한데, 일본은 철저히 국익 우선주의를 선택한다. 북한의 핵 보유가 자국 안보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내심 미국이 북한에 ‘외과적 선제공격’을 하기 바라는 눈치마저 보인다. 경제적으로 북한을 돕는 남한의 태도가 못마땅한 참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들고 나오는가 하면, 그래도 근린 우방이라며 남측과는 이중 자세를 취한다. 미국과 일본이 어느새 토라져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셋째, 중국과 러시아가 취하는 태도다. 두 국가도 북한의 핵 보유를 원치 않는다. 다만 미국 일본처럼 강경 자세가 아닌 탄력적 유연성을 선택할 뿐이다. 남한으로서는 중국 러시아와 손잡고 핵 문제를 푸는 쪽이 수월해 보여 북방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래서 나온 위태로운 발상이 ‘동북아 균형자론’이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는 남한과 적대관계의 앙금이 남아 있다. 6·25전쟁 때 소련은 북한을 무력 지원했고, 중국은 북한 정권 붕괴를 막으려고 참전했다. 남한이 이들에 대해 ‘과거에는 적이지만 지금은 우방’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과거도 현재도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북한의 외교력에 못 미친다.

“식량과 비료를 더 보내 달라. 한 민족으로서 협력하는데 뭘 그렇게 주변 눈치를 살펴? 우리 보라고. 우리 인민은 견결히 강대국 미제와 맞서고 있어.” 북한의 주장이 그렇다.

▼南北입지 점차 좁아져▼

“제발 6자회담에 나와. 남측 체면만 살려 준다면 큰 선물을 주겠다.” 남한이 그렇게 매달려도, 핵 문제 상대는 미국이니 남측은 개입하지 말라며 딴청을 피운다. 자폭용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결사 항쟁을 다짐하는 고집불통의 형제를 두고 남한은 그저 속만 타는 형국이다.

이 땅에 전쟁이 터져서는 안 되니 한반도 평화 정착에 주변국이 도와 달라며 통사정하지만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의 경우처럼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될까. 미국이 이라크식이나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북한 핵을 봉쇄한다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러시아는 말로만 미국을 비난하지 않았는가. 중국과 일본은 이기주의적 민족주의로 강성 대국 구축에 여념이 없다. 그 가운데에 위치한 남북은 북한만 아니라 남한조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 민족의 운명이 불안하다.

김원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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