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北核위기 돌파구는]쿠나제 러 前외무차관에게 듣는다

  • 입력 2005년 5월 12일 23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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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북한 핵 위기 때 러시아 외무부 차관과 한국 주재 대사로 모스크바와 서울에서 현장을 지켜봤던 게오르기 쿠나제(57) 전 차관은 11일 “지금 상황이 1차 위기 때보다 심각하다”며 “북한에 있어서 핵실험은 이미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동북아시아 문제 전문가로 학계와 외교 일선에서 일했던 그에게서 북핵 해법을 들어 보았다.》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가. 1차 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했는데….

“두 위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1차 위기는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북한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의지를 잘못 읽은 데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지난 경험을 통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철저한 계산에 따라 의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당시 미국의 민주당 행정부는 북핵 사태의 군사적 해결 방안을 배제한 채 진지하게 합의에 이르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의 공화당 행정부는 ‘합의’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고 있다. 또 현재 북한은 핵실험에 가까이 가 있다.”

―핵실험 임박설까지 나오고 있지만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까지는 핵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하지만 ‘핵 능력을 가질 모든 준비가 돼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북한에 있어서 핵실험은 이미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문제다. 물론 핵실험 성공 여부는 별개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때는 정말 위기다.”

―1차 위기 당시에는 러시아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인상이다. 러시아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그때도 러시아의 역할이 있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한 직후 북한과의 모든 핵 협력을 중단했다. 북한에 압력을 넣고 미국을 지지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단독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6자회담에 동의한 것은 주변국과 부담을 나눠 가지려는 의도다. 따라서 6개국 모두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북한의 안전보장 등 어떤 합의가 이뤄지면 중국과 함께 이를 보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미 사이의 중재 역할은 어렵다.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북한에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도 단독으로는 어렵다. 중국과 함께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북한 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해 제재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는가.

“개인적으로는 국제적인 대북 제재가 과연 효과를 낳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태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안보리 상정에 동의할 것이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전쟁 위협을 얘기하기는 아직 이르다. 북한이 선제공격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전쟁은 곧 북한의 완전한 파괴와 체제 붕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발언을 보면 미국의 군사 행동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군사 행동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은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 흐름이 그렇다는 뜻인가.

“미국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이란 문제가 우선이고 북한은 그 다음이다.”

―앞으로 북핵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현재의 모호한 긴장 상태가 오래 갈 수 있다. 당사국들이 여기에 익숙해지고 있다. 물론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인가.

“북한의 복귀가 빨리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중국의 역할도 제한돼 있다.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단일한 입장을 마련해야 한다.”

―6자회담 무용론이 많다.

“이런 다자회담이 효율적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안이 없다. 6자회담이 실패하면 안보리로 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오래 끌수록 불리한 측은 북한이다. 외부의 지원 없이 경제 재건은 불가능하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어려움은 더해 갈 것이고 체제의 위기도 더 커질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게오르기 쿠나제는…▼

△국립모스크바종합대 동양어학부 졸업(일본어문학 전공)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연구위원

△외무부 차관(1991∼93)

△주한 대사(1993∼97)

△현 러시아연방인권위원회 사무차장

인터뷰=김기현 모스크바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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