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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4월 2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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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기도는 이기적이다. 수익 내 달라고 돈 맡겼는데, 최고경영자가 병치레라도 하면 펀드 성적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내 돈을 위해’ 회장의 건강도 중요하다.
이런 이기심은 정상이다. 도둑질 안 하고, 남 등치지 않는 다음에야 돈 불리겠다는 게 죄 될 리 없다. 경쟁적 경제동기(動機)를 인정하고, 사유재산을 지켜줘야 더 벌려고 덜 잔다. 그래야 부자가 늘고 부국도 된다.
회장은 고객이 고맙다. 건강을 빌어 주는 마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신뢰받고 있지 않은가. 고객은 숱한 펀드운용사의 실력을 재 보고, 믿음이 더 가니까 그 회사를 찾았을 터이다.
고객이 신봉하는 절대적 잣대는 수익률이다. 돈은 이에 따라 몰리거나 떠난다. 손실 입힌 뒤에 남 탓이나 변명하는 건 꼴불견에 헛수고다.
회장은 말을 아낀다. 실적으로 답한다.
돈 장사는 사람 장사다. 주가가 뛰어도 죽 쑤는 펀드매니저가 있고, 시장이 꺼져도 돈을 불려 주는 고수가 있다. 고수를 많이 모으고, 범재를 인재로 만드는 게 회장의 최대 임무다. 여기서 실패하면 건강을 빌어 줄 고객도 사라진다.
회장은 젊다. 하지만 스무 살 연장의 60대 후반 베테랑을 삼고초려(三顧草廬)로 모셔 온다. 반대로 가망 없는 30대 직원에겐 사표를 받는다. 사원들은 감이 빠르다. 회장이 말하지 않아도 이런 용인(用人)을 보고 움직인다. 저절로 일에 대한 충성심이 나온다.
▼“획기적인 것은 위험하다”▼
회장은 전횡(專橫)을 스스로 경계한다. 자신이 원조(元祖) 고수지만 독판(獨判)의 한계를 안다. 뜯어보면 누구에게나 배울 게 있다. 보완되기를 거부하는 독선적 리더는 위험하다고 깨닫는다.
사장이나 간부들에겐 가만히 있어도 두려운 존재가 회장이다. 그런 판이라 ‘네가 뭘 알아’ 몇 번 하면 ‘회장 코드’가 법이 되고 만다. 창조적 반대는 사라진다. 이는 망조(亡兆)다. 그래서 열린 경영, 위임하는 경영을 몸으로 보여 준다.
회장은 몸을 낮춘다. 자신이 샐러리맨 시절에 알았던 ‘더디게 가는 사람’을 지금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대하려고 애쓴다. 밥 사주는 자리에도 먼저 나가 기다릴 때가 많다. 바빠도 티를 안 낸다.
“획기적인 것은 위험하다.” 이 믿음 하나는 흔들림이 없다. 경영철학 1장이다. “획기적인 일을 했다는 사람이 물러간 뒤에 보면 그 회사는 나빠져 있다. 온갖 선언을 하고 포장을 했지만, 결국 다음 사람이 수습하느라 버거운 전투를 해야 한다. 꾸준히 준비하고 기본을 지키는 것이 성공의 조건이다.”
나는 회장을 많이는 모른다. 그저 잘나가는 회사와 그 리더의 모습에다 세상을 한번 겹쳐보고 싶었다.
정부는 어떤가. 경제를 걱정하면 악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 기어이 격파하려 한다. 믿기지 않는 ‘완전 회복’을 말한다.
앞뒤 안 가리고 자주(自主)다. 국민 부담이 폭증하는 건 훗날 일이다.
갑자기 동북아 균형자를 자임하고, 정작 행동해야 할 때는 잠수한다. 균형자론이 평지풍파 일으킨다는 여론은 ‘친미’로 몰아붙인다. 그리고 중국을 향해 웃음 짓는다. 그 중국에서는 유미(留美·미국유학)파가 핵심 엘리트로 뜨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견은 설 자리가 좁다. 참여정부에 토론공화국이라지만 ‘생산적 소통’은 멀어졌다. 주로 대통령 말을 흉내 잘 내는 사람들만 모인다. 원로의 고언은 퇴물의 넋두리로 냉대받는다.
▼“나라님의 건강을 빌고 싶다”▼
말은 현란하고 장황하지만 시장에서 통하는 경제 실적, 외교 치적은 빈약하다. 이런 쓴소리를 하면 역공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요란한 구호에 대해선 공무원들조차 수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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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이 보여 주는 것과 같은 ‘실용(實用)’이 정부에서 체질화되기를 기다리기엔 시간도 별로 없어 보인다. ‘실용=결과가 좋은 것’이다.
정부의 고객은 국민이다. “나라님이 건강하시기를 늘 기도한다”는 국민 고객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도록 정부가 회장을 많이 닮아 주었으면 좋겠다. 국민에게 이 정도 이기심은 허락하기 바란다. 세금 내기가 여간 힘겹지 않은 국민이다.
배인준 논설실장 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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