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칼럼]대통령 復職 1년

  • 입력 2005년 5월 9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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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참 빠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한 지도 14일로 어느덧 1년이다.

‘지금 국민 여러분은 1년 전보다 더 잘살고 있습니까?’ 이번 주 외국에서 돌아오면 이렇게 한번 물어봐주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그 사이 나라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중심엔 역시 대통령이 있었다. 그간에 만들어진 상황은 단지 과거지사가 아니고, 국민의 장래에 계속 파장을 미칠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5일 ‘업무 복귀에 즈음하여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했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면서 국정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나가겠다.” “급한 나머지 원칙을 무너뜨리고 무리한 정책을 써서 몇 년 뒤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과연 국정의 방향을 바로잡았는지, 대통령 복직 1년을 맞아 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은 길게 보자고 했지만 올해 1분기 국민의 생활경제고통이 2000년 이래 가장 크다는 분석(LG경제연구원)에 눈감기는 어렵다. 멀리 보더라도 외교안보, 경제, 교육 등이 바로 가고 있는가. 잘못된 길로 빠졌다가 되돌아 나오려면, 정권은 떠나면 그만일지라도, 국민은 복원(復元)의 고통과 비용을 오래 치러야 한다.

정부가 미일과의 관계를 국익 차원에서 바로 이끌고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한미, 한일관계의 균열을 메울 만큼 중국 러시아와 신뢰관계를 쌓은 것도 아니다. 북한은 더더욱 남쪽의 성의(誠意)에 화답하는 모습이 아니다.

▼메아리 없는 자주와 민족▼

‘동북아 균형자’는 메아리 없는 기염(氣焰)일 뿐이다. ‘자주와 민족’ 역시 일부 국민의 정서적 공감은 얻을지언정, 대외관계의 안전판을 다지는 데는 오히려 마이너스 작용을 하고 있다. 외교안보에서 만용은 용기가 아니다. 우리도 북한처럼 모험주의로 치달을 수는 없다. 국민이 끝까지 감내하지 못할 것이다.

실천적 준비보다 말이 앞서는 자주는 한미동맹의 이완에 따른 안보환경의 취약화와 국민부담의 증가로 연결된다. 민족의 이름 아래 북한정권을 감싸기에 바쁘다보니 군(軍)이 연성화(軟性化)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흔드는 행태까지 나타나지 않았는가.

해프닝 같지만,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친서를 전한 사신(使臣)에게 “친서 내용을 이야기해 달라”고 기자들 앞에서 말한 것은 여러 모로 걱정스럽다. ‘친서의 외교적 의미도 모르는 대통령’으로 비칠 언행은 국민과 국익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이런 걸 ‘화끈하다, 멋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설혹 있더라도 지도자는 ‘당장의 (어리석은) 박수를 바라기보다 외교의 장래를 내다보면서’ 행동해야 옳다. 일본에 대해 외교전쟁을 선포하다시피 했지만 한두 달도 지나지 않아 거품이 돼버린 게 현실이다.

경제와 교육에서 ‘창의와 경쟁’보다 ‘균형과 평등’을 더 큰 가치로 내세운 결과는 또 어떤가. 정부는 경쟁과 효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적잖은 정책들이 시장원칙을 흔들어 왔다.

시장이 만능(萬能)은 아닐지라도 자본주의 시장원리를 지켜줘야 ‘무리한 정책을 쓰지 않고도’ 경제를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대통령은 “주택시장에서 생기는 모든 이익은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이런 반(反)시장적이고 반(反)헌법적인 발언에 잠시 위안을 받는 국민이 많을지는 모른다. 대통령이 이 점을 계산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듯한 이 한마디는 정부에 대한 불신, 돈의 불안,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중산층도 두려워하는 反시장▼

결국 더 많은 국민을 피해자로 만들 것이다. 균형, 형평, 분배 등을 내세운 과격한 경제정책에 대해 이제는 보통 중산층까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선전(宣傳)은 현실이 되지도 않았다. 대통령 말대로 ‘급한 나머지 경제정책의 원칙을 무너뜨리면’ 두고두고 경제를 어렵게 할 우려가 짙다.

현 정권은 정부 안에서는 분권을 말하지만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국가 우위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거기에 왜곡된 평등이데올로기를 덧씌운 게 교육정책 아닌가. 세계에서는 결코 통하지 않을 무리한 정책에의 집착은 ‘인재 입국’을 더욱 멀게 할 뿐이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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