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올초부터 투기자본 대응 검토

  • 입력 2005년 4월 14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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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경제보좌관실은 올해 2월 중순 ‘투기성 외국자본 유입의 영향과 대응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서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외국자본의 동향과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거론하면서 외국계 사모펀드의 조세 회피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이 제3국의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명목상의 회사(페이퍼컴퍼니) 명의를 이용해 한국에서 거액의 차익을 남기고도 세금을 내지 않는 데 대한 대응방안도 담고 있다.

외국계 펀드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청와대와 정부 전반의 이런 기류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조세조약(이중과세방지협정) 등 국제기준에 비춰볼 때 외국자본에 대한 과세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세무당국, 왜 ‘칼’ 빼들었나=외국자본에 대한 본격적인 세무조사는 2003년에 이어 두 번째. 당시 쌍용증권을 인수 후 매각했던 미국계 H&Q펀드 등에 대해 조사가 진행됐으나 큰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전례에다 최근 외국자본에 대한 한국 정책에 해외의 시각이 곱지 않은데도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은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물밀 듯이 유입된 외국자본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경제보좌관실이 2월 작성한 보고서는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지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조세를 피할 때는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사실상의 투자자를 확인해 과세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조세피난처를 조세조약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쪽으로 관련 국가와의 조약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무조사의 직접적인 계기는 나빠진 ‘국민감정’이라는 관측도 있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어려운 사정을 활용해 싼 값에 부실기업 등을 인수한 뒤 재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도 세금을 내지 않아 여론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과세할 수 있나=외국자본이 한국에 사업장(연락사무소 수준 이상의 일정 기준을 갖춘 사업현장)을 갖고 있다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 사업장이 없거나 조세피난처에 법인 등록을 해 놓고 한국에서 투자하는 펀드에는 세금을 물리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뉴브리지캐피탈은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설립한 ‘KFB 뉴브리지 홀딩스’ 명의로 한국에서 투자활동을 했다.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조세조약은 거주지(법인 소재지) 국가가 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 지분 매각으로 1조1500억 원의 양도차익을 올렸지만 한국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세조약 해석서 등을 적용하면 조세피난처를 활용하는 자본에 대해 이익이 발생한 국가에서 과세할 수도 있다.

문제는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법인이 명목상의 회사라는 점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명목상의 회사라는 사실을 증명하더라도 펀드의 실제 투자자가 속한 국가와 한국이 ‘거주지 과세’ 원칙을 담은 조세조약을 맺고 있다면 과세할 수 없다.

한국은 62개 국가와 조세조약을 맺고 있으며 거주지가 아니라 이익이 발생한 곳에서 과세하도록 조약을 맺은 나라는 일본, 캐나다, 독일 등 일부 국가에 불과하다.

▽외국계 반응 및 예상되는 부작용=국세청의 전격 세무조사에 대해 외국계 투자회사나 펀드들은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한 외국계 펀드의 고위관계자는 “한 번도 불법이나 탈법을 저지른 적이 없다”며 “그렇지 않아도 경쟁이 치열해져 한국시장의 수익성이 의문시되는데 합법적 비즈니스에 대해 조사를 한다면 철수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세무당국이 이렇다 할 혐의를 밝혀내지 못한다면 외국자본이 되레 역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조세피난처:

외자 유치를 목적으로 법인의 소득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 바하마, 버뮤다 제도 등이 대표적이며 한국에서 활동하는 자본들은 주로 말레이시아의 라부안을 이용한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국세청, 외국계 대형펀드 세무조사

국세청이 외환은행의 최대주주인 미국계 펀드 론스타 등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 자본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외국 자본에 대한 세무조사가 처음은 아니지만 최근 정부가 투기성 외국 자본의 문제를 계속 지적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14일 국세청과 금융계에 따르면 론스타 등 외국 자본에 대한 세무조사가 12일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 한상률(韓相律) 조사국장은 “조사 대상은 물론 내용과 절차, 시기 등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해 조사를 벌이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그는 “외국 자본의 변칙적인 부당이득에 대해 검증하는 것은 국세청의 임무”라며 “거래와 투자가 정상적인지를 국제기준에 따라 명백히 검증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외국계 펀드의 고위 관계자는 “국세청의 1차 조사 대상은 론스타와 칼라일이지만 곧 뉴브리지캐피탈을 포함해 5∼7곳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씨티그룹도 참고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주로 단기차익을 노리는 외국계 사모(私募) 펀드들은 국내에서 막대한 투자 차익을 얻고도 해외에 법인등록을 해두는 등의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는 이런 투기성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시작된 것이다.

이주성(李周成) 국세청장은 12일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금 탈루에 대해서는 차별 없이 원칙을 세워 나갈 것”이라며 “음성 탈루 소득은 지속적으로 척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증현(尹增鉉) 금융감독위원장도 14일 ‘21세기 경영인클럽’ 초청 강연에서 “비정상적인 시장 교란행위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자본은 국내외 구분 없이 엄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당이득을 규제하지 않으면) 선량하고 건전한 기업과 시장 참여자에 대한 역차별이 일어나 경제와 금융시장의 안정적 발전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세무조사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영 참가 목적으로 지분을 5% 이상 사들이면 자금 출처와 목적 등을 밝히도록 하는 ‘5%룰’ 강화와 은행 외국인 이사 수 제한 움직임 등으로 외국인투자가들의 불안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세무조사까지 하면 외국 자본이 한국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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