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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2월 25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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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제동원 피해 조사를 위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16일부터 22일까지 일본을 방문하고 온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의 전기호(全基浩) 위원장과 최봉태(崔鳳泰) 사무국장은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정부에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최 사무국장은 “일본 정부의 위탁으로 한국인 피해자들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는 일본의 사원 3곳을 둘러본 결과 100여 구의 유골이 서로 섞여 있거나 심지어 숯과 나무 등과 함께 쓰레기처럼 보관된 경우도 있었다”며 “이는 강제동원된 한국인 희생자들이 일본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3곳에 합사(合祀)된 235구의 유골 가운데 104개는 명부가 있었지만 나머지 131개 유골은 명부조차 없어 누구의 유골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
![]() 일본 홋카이도 무로란시 교쇼지에 안치된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함에서 발견된 편지 유품. 희생자의 어머니가 멀리 떠나 있는 아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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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무로란(室蘭) 시 교쇼지(光昭寺)에 안치된 유골함에서는 경남 사천에서 일본으로 끌려가 중노동에 시달리다 희생된 구모 씨(사망 당시 17세) 모친이 구 씨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됐다.
엽서의 소인이 1944년 12월 25일로 찍힌 이 편지에는 “내년 7월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빌고 있다. 엄마는 매일 걱정이다…(중략)…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몸 건강해라”라고 적혀 있어 자식의 무사귀환을 비는 모정이 절절히 배어 있었다.
그러나 모친의 간절한 소망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제철에서 일하던 구 씨는 조국의 광복을 한 달 앞둔 다음 해 7월 15일 숨졌던 것. 위원회는 “구 씨의 유골을 포함해 유족이 확인된 3구에 대해서는 유족에게 유골 확인 사실을 통지했다”고 밝혔다. 한편 위원회는 더 효율적인 유골 실태 조사를 위해 한일 양국이 민관 합동으로 가칭 ‘한일유골실태조사위원회’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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