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교육부총리 결국 낙마…딜레마에 빠진 청와대

  • 입력 2005년 1월 7일 23시 46분


할말 잃은 교육부 직원들7일 교육인적자원부 간부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떠나는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원대연 기자
할말 잃은 교육부 직원들
7일 교육인적자원부 간부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떠나는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원대연 기자
임기 3년차를 맞아 ‘선진한국’을 강조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했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집권 중반기 국정운영 구상이 이기준(李基俊) 교육부총리의 낙마로 첫 단추부터 꼬이게 됐다.

노 대통령은 새해 들어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기 위해 올해는 선진경제의 틀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해 왔다. 또 경제 재도약을 뒷받침할 고급 인력의 확보를 위해 이공계 대학교육 개혁을 명분으로 이공계 출신이자 서울대 총장 경력이 있는 이 부총리 카드를 선택했다.

이 부총리 카드는 종전의 ‘개혁 코드’에서 과감히 벗어난 인선이기도 했다. 실제로 청와대 내엔 이 부총리의 서울대 총장 재임 시절 불거진 도덕적 흠결에 대해 개혁 성향의 지지층에서 반발이 있더라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물론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까지 이 부총리 임명에 유감을 표시하고 나서면서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7일 오후 이 부총리 아들의 대학 부정 특례입학 의혹과 국적 포기 이후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청와대 일각에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기류가 흘렀다.

여기에다 청와대의 인사추천 및 검증 시스템의 문제까지 제기되면서 이 부총리 문제는 국정운영 능력의 문제로 비화하는 양상을 띠게 됐다.

노 대통령은 7일 오후 이 부총리의 사퇴 소식을 보고받은 뒤 8일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와 협의해 사퇴 수용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부총리가 스스로 진퇴를 결정한 만큼 이를 돌이키기는 어렵다는 게 청와대 분위기다.

문제는 지난해 12월 초 이라크 북부 아르빌의 자이툰부대 전격 방문 이후 모처럼 상승 곡선을 타고 있던 노 대통령의 지지도가 이번 사태로 인해 꺾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여권이 구상 중인 집권 중반기의 여러 가지 정책이 추진력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를 비롯한 현 정부의 우호세력까지 이반(離反) 현상을 보인 것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옷 로비 사건’을 계기로 친여세력이 등을 돌렸던 전례를 연상케 한다.

이는 지난해 말 4개 쟁점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한 데 따른 반작용으로 여권 내에서 힘을 얻었던 실용주의 노선이 강경개혁파에 의해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청와대 일각에선 이 부총리의 퇴진을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그가 결자해지(結者解之)로 노 대통령의 짐을 덜어준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기류도 없지 않다.

그러나 ‘경제 올인’과 ‘뉴 데탕트’를 화두로 집권 중반기를 풀어가려던 노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의 구상은 자칫 진보-보수 양 진영의 협공 속에서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질 공산이 커졌다.

이는 노 대통령에게 분명하게 한쪽에 서는 ‘결단’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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