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언론재단이사장 임명 거부 명분 없다

  • 입력 2004년 12월 27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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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은 어제 한국언론재단 박기정 차기 이사장의 임명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정부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박 이사장은 사퇴거부의 뜻을 분명히 하면서 “이사회 결정대로 문화부에 임명제청을 하겠다”고 맞섰다.

정 장관은 임명을 거부하는 명분에 대해 산하단체 임원의 연임(連任)을 허용하지 않는 게 정부의 인사원칙이라고 말했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원칙을 이유로 내세운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 장관은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으나 이 또한 임명 거부의 명분으로는 군색하기 짝이 없다.

문화부 장관이 산하단체의 이사회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 존중을 위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이 있을 때만 이뤄질 수 있다. 관행에 가까운 인사원칙을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내세운 것을 보면 이사장 선임에 절차상 하자가 없음을 문화부도 인정한 것이다. 언론재단 정관에는 이사장의 연임이 안 된다는 조항이 없다. 거부권 행사는 합당한 명분을 지니지 못한다.

정 장관은 “이사회 전에 박 이사장을 만나 서동구 전 KBS 사장을 새 이사장 후보로 거론한 적이 있다”고 말해 정부의 인사 개입을 사실상 시인했다. 정부의 인사 개입이 이뤄지고 있음을 거리낌없이 고백한 셈이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언론재단이 감사원 감사에서 기관경고를 받은 점을 내세우며 박 이사장의 도덕성을 들먹이기도 했다. 산하단체에 원하는 사람을 앉히기 위해 억지 논리와 근거 없는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파문이 커질수록 집권 측의 실망스러운 면모만 더 드러날 뿐이다. 정부는 ‘코드 인사’를 고집하지 말고 순리대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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