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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21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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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사히신문이 탤런트 배용준씨의 일본식 애칭인 ‘용사마’를 올해의 유행어로 선정한 것과, 집권 자민당이 자위대(自衛隊)를 자위군(自衛軍)으로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안 초안을 확정했다는 보도였다.
일본의 ‘용사마’ 열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직접 언급한 일이 있을 만큼 대단하다. 그래서 ‘용사마’가 상징하는 한류 열풍은 일본인들에게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양국의 진정한 우호 선린을 바라는 이 같은 염원은 한편에서 되살아나는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 앞에 그만 사그라지고 만다.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이제 현실의 문제가 됐다. ‘전수방위’와 ‘전력 보유 금지’ 원칙을 폐기하려는 그들의 움직임은 과거 일본으로부터 수없이 침략당하고 국권과 강토를 빼앗기기까지 했던 우리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아프게 헤집는다.
세계 최첨단의 무기와 장비를 갖춘 일본의 군사력은 새삼 조목조목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북한 핵문제에 민감한 일본이 사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핵무기를 제조할 역량이 있음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또 한반도를 감시하는 일본의 정찰위성이 북한 지역만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일본의 군사 위협을 덜 걱정했던 것은 일본이 평화헌법 아래에 있어 타국을 침략할 수 없고, 당장은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 안보동맹을 맺은 ‘같은 편’이고, 일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확고하다는 점도 불안을 덜어 준 측면이 있다.
그러나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고려하면 한일관계가 계속 순탄하리라고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만일 북핵 문제가 악화돼 대북 군사제재가 단행되고 일본이 이에 동참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또 북-일간에 군사적 충돌이 있거나,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의 갈등이 군사 분쟁으로 비화한다면…. 일본의 군사적 팽창을 생각하면 근심은 끝이 없다.
한 전직 국방부 장관이 사석에서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우려하면서 “한일이 붙을 경우 우리가 이기긴 어렵겠지만 일본도 결코 성치는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일본이 깨닫도록 힘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을 듣고 공감한 적이 있다.
일본 삿포로의 눈 축제는 세계 각국의 명소를 눈과 얼음으로 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광화문 등이 소재가 된 적도 있다. 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위대원들이다. 몇 년 전 삿포로에서 자위대원들의 눈 축제 준비작업을 지켜보며 그들은 과연 눈을 빚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바로 그들이 이제 자위군으로서 세계로 뻗어나가려 하고 있다.
요즘 여권에서는 북한에 대한 주적 개념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 따로 주적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다른 잠재적 적국을 상정하고 그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일까. 일본의 두 얼굴을 생각하며 돌아보는 한국의 외교안보 현실은 정말 착잡하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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