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中 교토의정서 ‘발등의 불’

  • 입력 2004년 10월 1일 18시 45분


미국 중국 한국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국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러시아 정부가 지난달 30일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키로 한 ‘교토(京都)의정서’를 승인하고 의회에 비준을 요청하기로 함에 따라 교토의정서 발효가 임박한 데 따른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세계 9위인 한국은 내년 2차 협상에서 현재의 개발도상국 지위에서 ‘감축대상국’으로 격상될 가능성이 커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 정부 결정에 대해 유럽연합(EU)이 “EU 외교력의 승리”라고 환호한 반면 미국은 교토의정서에 대해 거부 입장을 재확인했다.

▽러시아 결정의 의미=러시아의 비준이 관심을 끄는 것은 교토의정서가 199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차지하는 55개국 이상이 비준해야 발효될 수 있기 때문.

한국 중국 일본 EU 캐나다 등 모두 120여개국이 비준해 국가 수는 확보됐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채우지 못해 발효되지 않았으나, 17.4%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가세하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이 55%를 넘는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조약 발효가 가능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3월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비준을 거부하겠다고 밝혀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의미와 한계=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 38개 선진국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메탄 불화탄소 수소불화탄소 불화유황 등 6가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평균 5.2% 줄여야 한다.

이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국가간에 배출 쿼터를 사고파는 ‘배출권 거래제(Emission Trading)’가 실시된다. 기술 개발이나 에너지 사용 효율화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으면 그만큼을 다른 나라에 팔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없거나 다른 나라로부터 배출권을 넘겨받지 못하면 공장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어 에너지 소비가 많은 국가들은 적잖은 부담이 예상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온실가스 배출권이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4%를 차지하는 미국이 계속 가입을 거부하면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더라도 실효성은 의문시된다.

▽한국의 고민=한국은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교토의정서 의무대상국에서는 일단 제외됐다.

그러나 일부 선진국은 한국과 멕시코 등에 대해 선진국처럼 2008년부터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1차 시행기(2008∼2012년)에서는 빠졌지만 2차(2013∼2017년)에서는 의무대상국에 포함될 게 확실시된다. 정부는 총리실 주관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방안을 비롯해 산업구조를 환경친화적으로 전환시키는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각국 반응▼

러시아 정부가 교토의정서를 승인하자 각국은 득실 계산에 분주했다.

교토의정서 발효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러시아 정부의 결정을 크게 반겼다.

EU는 러시아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하는 대가로 교토의정서 비준을 압박해 왔다.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은 1일 “러시아 정부의 결정은 기후 변화에 맞서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성공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EU의 환호 배경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이미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등 적극적 대비를 해 왔다는 자신감이 작용했다.

미국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교토의정서가 국가에 이익이 되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개별 국가의 몫”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의 온실가스 배출 대상국. 일본 환경성은 러시아의 교토의정서 비준 결정에 대해 1일 ‘커다란 전진’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국내 온실가스 삭감 정책이 제자리걸음을 해 온 데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이에 따라 그간 업계 반발로 주춤했던 환경세 신설과 국내 배출권 거래제 도입 움직임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철강 등 일본의 중후장대형 업체들은 “국제경쟁력을 잃게 돼 산업 공동화가 빚어질 것”이라며 공장의 해외 이전까지 들먹이고 있다.

러시아 내 여론은 여전히 찬반으로 갈려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있지만 비준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미하일 프라드코프 총리가 “앞으로 의회에서도 복잡한 논의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걱정할 정도다. 경제 부처들은 “막 살아나고 있는 러시아 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교토의정서란:

1992년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는 2000년까지 선진국들이 온실가스를 1990년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행이 지지부진하자 협약당사국들이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 모여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이산화탄소 등 6가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에 비해 평균 5.2% 줄이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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