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선거 빚

  • 입력 2004년 9월 25일 16시 37분


모처럼 어렵게 벼슬길에 오른 집안의 걱정거리는 아들이 없어 대가 끊기게 된 것이었다. 데릴사위를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고향 인근에서는 쓸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가세가 기울어 석양빛이 든 가문에 사위로 들어오겠다는 사람도 드물었다. 결국 타관에서 사위를 들였다. 사위는 처가의 재산을 담보로 빚을 내고 논밭을 팔아 사업을 벌였다. 처음에는 잘돼 간다 싶던 사업이 급전직하로 기울어졌다. 친척들은 데릴사위가 집안 망해 먹는다고 아우성이었다. 아직 성례(成禮)를 시킨 것은 아니니 데릴사위를 갈아 치우자는 사람도 있었다.

▷사위는 사업밑천이 바닥나 희망이 없어 보일 무렵 그럴듯한 동업자를 찾아냈다. 그리곤 얼마 안가 동업자를 밀어내고 홀로 나서 대박을 터뜨렸다. 그 뒤부터 사위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위 주변에서 처가 사람들이 어려울 때 팔 걷고 도와주지 않고 다른 사윗감 찾으러 다녔다는 불평이 흘러 나왔다. 사위는 종국에 영락한 문패로는 큰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며 처가를 떠났다. 집 나간 사위는 밑천을 ‘올인’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이젠 남의 사위가 돼 옛 처가의 빚을 갚아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비유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민주당과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의 관계가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민주당은 대통령선거 빚 때문에 국고보조금을 압류당해 당직자 월급도 못 주는 형편이다. 도의적으로 보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책임져야 할 빚이다. 한때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노 대통령과 열린당은 돈 떼먹고 잠이 옵니까’라는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에 서 있는 모습은 비감(悲感)해 보이기도 하고 코미디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민주당이 펼쳐 보이는 부채장부는 실제보다 부풀려진 감이 있다. 노 후보를 위한 5차례의 당보 제작비, 대선 공약집 제작 발송비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당사 임차료까지 계산에 넣은 것은 떼쓰기 같다. 민주당을 박차고 나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겠지만 조용히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민주당에도 집 나갈 데릴사위를 고른 책임이 있지 않은가.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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