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호씨, 6월3일 피랍 비밀유지 부탁”

  • 입력 2004년 7월 2일 21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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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 1일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 등을 통해 해명했으나 오히려 거짓말 논란으로 의혹이 커지고 있다.

▽거짓말 의혹=김 사장은 6월 10일 이후 피랍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선일씨를 가나무역에 소개해준 서울 양천구 M교회에서는 이미 6월 6일 일요예배에서 김씨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중동에서 잠시 귀국한 김 사장의 친형이 교회 목사에게 피랍 사실을 전해주면서 기도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6월 3일 선교사 8명을 인솔해 이라크 바그다드로 들어갔던 K목사도 김 사장으로부터 피랍 사실을 들었다고 정부 기관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 사장은 “피랍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 공개하면 (무장단체가) 나와 김선일까지 죽인다고 한다”며 비밀 유지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요르단 암만에 거주하는 한 목사도 본사 기자와의 국제전화 통화에서 “알 자지라 TV의 방송(6월 21일) 2주 전에 가나무역 직원과 가족, 한국인 주변 이라크인들은 피랍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네 차례(6월 1, 7, 10, 11일)나 대사관 직원을 만나고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의혹은 더욱 커지게 된다.

교민들 사이에 김씨 피랍 소문이 퍼져 있었다면, 더구나 한국에 있는 기독교인 수백명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면 왜 유독 한국대사관만 몰랐느냐는 점도 의혹을 더한다.

M교회 집사로 2000년부터 교회 선교사 신분을 겸했던 김 사장이 “가나무역은 특정 종교단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 배경도 의문이다.

피살된 김씨는 M교회를 통해 이력서를 가나무역으로 보냈으며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정식 선교사로 활동키로 돼 있었다는 교회측 설명과도 배치된다. 김씨는 현지에서 설교까지 했고, 가나무역 직원 10여명도 모두 기독교 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사장은 납치단체와 살해단체에 대해서도 “동일단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김씨가 살해되기 얼마 전까지 별다른 요구조건도 내걸지 않고 유화적이었던 납치단체가, 한국군 추가 파병 결정이 내려진 18일경 이후 갑자기 강경해졌다는 점에서 두 단체가 서로 다른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도 거리가 있다.

김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와 벌인 교섭 방식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인에게 우호적이고, 요구조건도 없는’ 납치단체가 왜 20일 넘게 김씨를 억류만 하고 있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AP통신 의혹=김씨 억류 상태를 담고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6월 3일 전달받아, 이를 24일 공개한 AP통신에도 의혹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외교통상부 직원에게서 “한국인 실종 사실이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무시했다는 게 AP측 공식 해명이다.

그렇다면 김씨 살해 위협이 보도된 21일부터 3일간은 왜 보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무장세력이 제시한 24시간의 최후 통첩 시간 이전에 보도했더라면, 사태를 반전시킬 수 있는 단서가 마련됐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추가 파병이 걸려있는 동맹국의 민간인 목숨이 달린 중대 사안을 사무관급 직원 한 명에게, 그것도 단 한 차례 허술하게 물어보고 지나쳤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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