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라인 싹 갈아야”…‘조각수준 개각론’ 확산

  • 입력 2004년 6월 25일 18시 53분


“이게 정부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차제에 싹 갈아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여당 의원으로서 공개적으로 떠들 수도 없고…”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건을 보는 여권 내부의 위기감은 심각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살해되던 순간 외교통상부로부터 ‘희망적이다’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정부는 20여일이 지나도록 김씨 피랍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6월 3일 AP통신이 이 사실을 외교부에 확인했음이 밝혀져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노 대통령이 24일 감사원에 외교부 국가정보원 국방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4개 부처에 대한 특별감사를 전격 지시한 것도 이 사건이 자칫 현 정권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는 의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잘잘못이나 책임 소재를 떠나 외교 안보 라인에 대한 전면적인 재정비 수순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친노(親盧) 직계로 분류되는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 아니냐. 대통령은 그동안 외교 안보 라인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외교부는 물론 국정원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해외 정보 및 테러업무의 주무부처가 국정원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당직자는 “우리나라에 국정원이 있느냐”고 비꼬았고, 한 의원은 “테러사건의 실질적 지휘 라인은 국정원이다”라고 지적했다.

여권에서는 외교 안보 라인뿐만 아니라 조각 수준의 개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차츰 세를 얻고 있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본회의에서 인준을 받을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개각은 예정된 수순이다. 노 대통령은 당초 이 후보자가 인준될 경우 통일 문화관광 보건복지 등 3개 부처 장관만을 교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씨 피살사건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은 호미가 아니라 가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한 의원은 말했다. 이 후보자도 “우리나라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생각했다. 어처구니가 없다”고 지적했다.

위기감은 당 쪽이 훨씬 강하다. 25일 오후 외교부 직원이 AP통신 기자에게서 김씨 피랍 문의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임종석(任鍾晳) 대변인은 즉각 논평을 통해 “외교부의 믿기지 않는 안이한 대처와 어처구니없는 초기 대응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며 “국회 차원에서 청문회든 국정조사든 신속한 진상규명 작업을 벌여 실추된 대한민국의 국가 위신을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국민의 분노와 충격은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조각 수준의 개각’이라는 비상한 대처가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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