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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2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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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총리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로 출근을 하자마자 김덕봉(金德奉) 공보수석비서관을 집무실로 불렀다.
장관 임명제청권 행사를 요청하러온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을 만나기 전 자신의 입장을 언론에 밝히기 위해서였다.
고 총리는 이날 김 비서관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김 비서실장이 두 차례 나를 찾아와 장관 임명 제청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고 총리는 이어 “‘나는 김 비서실장에게 ‘헌법상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제도의 취지에 비춰 물러나는 총리가 장관을 임명 제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고사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이날 오후 세 번째 찾아온 김 비서실장에게 사표를 건넸다고 김 비서관은 전했다.
고 총리가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은 ‘차기 내각을 통할할 다음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게 헌법 정신에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 총리는 결심을 굳히기 직전까지 헌법학자 등 지인들에게 자문을 하는 과정에서 “국가적으로 편법과 변칙이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때에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조언을 집중적으로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총리가 끝내 대통령의 요청을 사양한 것은 자신이 지켜온 소신과 원칙 때문”이라고 전했다. 다른 측근은 “고 총리가 1998년 2월 김영삼(金泳三) 정부 말기에 새 정부 탄생을 위해 불가피하게 제청권을 행사하긴 했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인식을 여러 차례 말했다”고 소개했다.
더욱이 총리의 제청권 행사는 위헌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어서 노무현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용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점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또 최근 정찬용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과 이병완(李炳浣)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개각 문제와 관련해 “장관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면서 “총리의 제청권은 형식상의 절차”라고 발언한 것도 고 총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청와대측은 고 총리가 청와대의 부탁을 끝내 거절하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일각에선 “고 총리가 대권에 욕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조심스레 나오기도 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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