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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0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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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작업 중이던 한 인부는 “지금 도배를 해야 할 만큼 벽지가 낡았느냐. 이 정도면 상당히 깨끗한 편 아니냐”는 질문에 “곤란하니까 그런 질문은 하지 마라.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며 곤혹스러워했다.
의원회관 4층의 한 사무실 벽엔 ‘칠 주의’라는 경고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도장공사를 하지 않은 바로 옆 사무실의 벽과 비교했을 때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개원비용이 낭비되고 있는 현장의 모습이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2004년 세입세출예산 각목명세서’에 따르면 개원비 중 의원회관 의원실 도장 도배공사 등에 들어간 시설비만 13억원. 이는 국회 중추기구 중 하나인 예산분석실의 2004년 예산인 3억7674만원의 3.5배에 이르는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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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국회는 이번 총선 직후 299명의 의원 모두에게 각각 13만원 상당의 서류가방을 지급해 3500만원 이상을 썼다.
또 국회의장이 초청해 열릴 초선의원 만찬비용으로 1600만원이 잡혀 있고, 국회 사무총장이 주최하는 초선의원 오찬비용도 600만원에 이른다.
개원 시설비 중 국회의장 공관 도배 도장 바닥공사 및 커튼 교체비용 1억2000만원 외에 국회 관리국 예산엔 국회의장 공관 조명기구 교체비용 2000만원이 포함돼 있다.
16대 국회 개원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00년 세입세출예산 각목명세서를 확인한 결과 당시에도 의장공관 개수비용으로 9700만원이 배정됐으며 자산취득비 항목엔 의장공관 노후비품 교체비용 1800만원이 따로 잡혀 있었다.
이에 대해 국회 사무처측은 “대통령이 바뀌면 청와대 시설이 개편 및 보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임 국회의장이 선출되면 의장 공관을 바꾸는 것도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이에 대해 “형식에 치우쳐 국민이 낸 세금을 효율성이나 생산성을 고려치 않고 아무렇게나 지출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국회가 ‘특권적 사고를 버리고 국민이 요구하는 바를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단적인 예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최한수(崔漢秀) 간사는 “국회가 개원비용을 자신들의 호주머니에서 갹출해야 한다면 절대 그렇게 쓰지는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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