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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3월 3일 22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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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3시20분경부터 9시50분까지 6시간반에 걸친 마라톤회의 끝에 내려진 선관위 결정으로 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불법 선거운동에 대해 두 번씩이나 경고성 촉구를 받게 됐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0일 ‘양강(兩强)구도 발언’ 등을 이유로 선관위의 ‘협조 요청’을 받았다.
특히 선관위는 관련 선거법 9조(선거에서 공무원의 중립의무)가 선언적일 뿐 처벌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주의’ ‘경고’ 등 명시적 규정은 피했지만 노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어서 앞으로 노 대통령의 선거 관련 행보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이날 회의에서 핵심 쟁점은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한 노 대통령의 지난달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회견이 선거법 위반이냐 여부였다.
선관위 관계자는 “발언 상황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의견개진 형식이었다는 점에서 적극적 선거운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특정 선거와 특정 대상을 지칭해 지지를 당부하는 발언은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명시적으로 ‘주의’ ‘경고’ 등의 표현을 쓰지 않은 것과 관련해 “그러나 어쨌건 선거법 위반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경고’로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같은 선관위 조치에 대해 야당은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좀 더 구체적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실제 1989년 영등포을 보궐선거 당시 민정당 총재였던 노태우 대통령이 비당원들에게 지지호소 서한을 돌리자 선관위는 즉각 ‘위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당시에는 대통령이 아니라 ‘특정당 총재’에게 내린 제재조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정한 선거관리를 책임 진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 불법성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강도가 세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선관위의 이번 조치로 노 대통령의 ‘불법행위’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즉각 탄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선관위의 이번 결정엔 대통령의 선거 개입 문제에 대한 야당의 유권해석 의뢰서가 선관위에 제출된 상황에서도 노 대통령이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정치인인데 어디에 나가서 누구를 지지하든 왜 시비를 거느냐”라고 항변한 것이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선관위는 또 어떤 형태로든 위법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 ‘관권선거’ 논란이 격화돼 모처럼의 정치개혁 무드마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고려치 않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다 총선과정에서 예상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특정정당 지지발언에 쐐기를 박는 사전차단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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