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대선]16대 대통령선거 드라마

  • 입력 2004년 1월 13일 10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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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처음 치러진 제16대 대통령선거(2002년 12월 19일)는 드라마였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1,201만4,277표(유효투표수의 48.9%)를 얻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1,144만3,297표 득표-유효투표수의 46.6%)를 57만980표(2.32%) 차이로 제치고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선 전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2002년 3월9일부터 4월27일 사이에 치러진 민주당 대선 후보 국민경선 3번째 지역인 광주에서 1위로 올라서면서 강력한 경쟁자였던 이인제 후보의 대세론을 꺾고 ‘노풍’을 일으켰다.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과정에서 이인제 후보의 색깔론과 음모론 공세를 극복해야했다.

이후 치러진 8·8 재보선의 민주당 참패로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속히 추락해 당내에서 후보 재선출론이 대두, 또 한차례 위기를 맞았다.

아울러 월드컵 축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정몽준 후보의 인기가 급등하며 10월 들어 대선 판도는 이회창 후보의 1강과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2중 구도로 정착됐다.

이에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촉발돼 양 후보의 TV 토론을 거쳐 여론조사에 의한 단일화라는 방식을 도출, 11월 24일 실시된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앞선 노무현 후보가 단일 후보로 결정됐다.

단일화 이후 각종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 앞섰으나 12월 초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선거 전날 밤인 12월 18일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철회해 막판 대역전의 빌미가 되는 듯 했다.

일련의 위기에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 미디어 정치광고전, 노사모의 활동 등에 힘입어 간신히 이회창 후보의 막판 추월을 따돌리고 16대 대통령에 당선했다.

노무현 후보는 영남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297여만표를 뒤졌으나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260여만표를 더 얻었고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권에서 이회창 후보보다 26여만표 앞선데다 수도권에서 72만여표를 앞서 57여만표 차이로 당선했다.

노무현 후보는 40대 초반까지는 우세했고 40대 후반부터는 이회창 후보가 앞섰다.

16대 대통령선거는 선거로 끝나지 않고 2003년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민주당 분당 사태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측근인 최도술씨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사실을 알게된 2003년 10월 자신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재신임 표명 직후 실시된 각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신임이 높게 나타나고 한나라당이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 4대기업으로부터 받은 불법 대선자금이 최소한 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지자 야당이 재신임을 반대하며 정국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12월말 한나라당의 주도로 노무현 측근비리 특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2004년 1월에는 대선자금 비리혐의로 국회의원이 무더기로 구속된데 이어 3월 12일 노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국은 급속하게 17대 총선(2004년 4월15일)으로 이어졌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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