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현구/ ‘평가위한 監査’는 곤란하다

  • 입력 2003년 11월 11일 18시 39분


노무현 대통령이 법조인이 아니라 경제관료 출신인 전윤철씨를 감사원장에 임명한 것은 향후 감사원의 활동이 단속과 처벌보다는 평가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감사원은 이미 7월 초 발표한 혁신방안에서 ‘국정평가 중추기관으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실질적으로 행정기관의 주요정책 전반에 대한 종합평가, 즉 기관평가를 시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정책 전반평가는 총리-국회 몫 ▼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 감사원(회계검사원)은 전통적인 ‘합법성 감사’ 차원을 넘어 ‘성과 감사’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 감사원도 성과 감사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 그 수단인 정책평가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책평가를 강조하는 것과 감사원의 위상을 정책평가의 중추기관으로 바꾼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정책평가와 관련한 감사원 감사의 한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감사원의 정책평가는 사업의 성과와 세부 집행과정에 한정돼야 한다. 행정부형 감사원이 갖고 있는 회계검사권과 직무감찰권은 위법 부당한 행위가 아닌 한 중앙행정기관의 고유기능인 정책형성 부분에까지 관여할 수가 없다. 중앙행정기관의 정책과정 전반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이나 내각통할권을 가진 국무총리, 그리고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할 수 있는 기능이다.

다음으로 감사원에 의한 정책평가는 기관 단위가 아니라 개별사업 단위로 이뤄져야 한다. 성과 감사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예산사업의 효율성 확보에 있는 것이지 기관의 전반적인 정책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관평가는 주로 업무상의 상급기관이 하급·소속기관에 대한 관리통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된다. 현재 감사원조직 구조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평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연한 관리적 사고와 원활한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된다. 그런데 우리 감사원은 선진국의 회계검사원과 달리 직무감찰권까지 갖고 있다. 직무감찰권은 합법성 위주의 권력적 통제를 기본으로 한다. 그런 권한을 갖고 있는 감사원이 국정평가의 중심에 선다면 행정기관의 정책운영이 경직되고 형식주의에 흐르기 쉽다.

행정부 내 평가의 중추기능을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예산기관에 두는 나라(예산연계형)가 있는가 하면, 한국이나 일본처럼 관리조정부서에 두는 경우(총괄조정형)도 있다. 전자는 평가 기능의 초점을 자원배분에, 후자는 정책관리에 맞추고 있다. 그러나 행정부형 감사원에 평가의 중추기능을 부여하는 선진국은 없다. 성과 감사에 의한 관리 통제를 강조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권력 분립과 견제 차원에서 감사 기능을 수행하는 의회형이나 독립형 회계검사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무조정실은 98년부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한국형 기관평가 모형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 기관평가는 성과주의 예산(기획예산처), 목표관리제(행정자치부), 성과감사(감사원) 등의 성과관리 제도를 비롯해 다양한 국정평가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정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평가관련 기능들간에 보완적 연계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 헌법상의 지위나 평가기본법의 취지에 비춰볼 때 대통령은 국무총리가 그런 평가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개별 사업단위 성과위주 평가를 ▼

감사원이 평가기능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은 기관평가가 아니라 개별 사업단위로 이뤄지는 성과 위주의 평가여야 한다. 또 성과 감사가 중요하다지만 감사원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합법성 감사를 기본으로 해야 하며 부정부패 통제 또한 감사원의 헌법적 책무에 속한다. 그 때문에 감사원이 ‘평가 중추기관으로의 변신’을 시도한다면 자칫 정체성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너무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고 했다. 감사원은 어디까지나 감사기관이어야 한다. ‘감사를 위한 평가’는 강조되어 마땅하지만, ‘평가를 위한 감사’는 아무래도 순리가 아닌 것 같다.

김현구 성균관대 행정대학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