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부시 내우외환… ‘不可’서 ‘검토’로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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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태국 방콕 셰러턴 호텔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 배석한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나종일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이 회담을 지켜보고 있다. -박경모기자
20일 태국 방콕 셰러턴 호텔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 배석한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나종일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이 회담을 지켜보고 있다. -박경모기자
미국의 대북 체제 보장에 대한 입장은 ‘강경’과 ‘온건’ 기조를 오갔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미국의 ‘영변 폭격설’까지 나돌았던 한반도 위기는 94년 북-미간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다.

합의문의 골자는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북한을 위협하지도 않아야 하며,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한다’는 것.

이후 2000년 5월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을 통해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으면서 북-미간 화해 무드는 최고조에 달했다. 친서는 ‘한미일 3국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으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중지 등을 받아들이면 경제제재 완화 및 미일의 대북 국교 정상화를 추진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인 협약이나 조약은 아니었지만 ‘대북 안전보장’의 성격을 띤 친서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같은 해 10월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북-미간 공동 코뮈니케(성명)를 통해 “양국은 상대방에 대해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연이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은 양국의 외교관계 수립이 임박했다는 전망까지 낳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하고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1년 취임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바뀌기 시작했다.

2001년 초 한반도 업무를 공화당 행정부에 인계했던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부 고위관리는 “북-미간 관계 개선 성과에 대해 설명하자 ‘수고했다’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따뜻한 태도와는 달리 백악관 핵심 외교참모들은 싸늘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며 “부시 행정부는 전혀 다른 대북정책 기조를 갖고 있음을 직감했다”고 회고했다.

북-미 관계는 2002년 북한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인하면서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으며 미국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대북 안전보장도 없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이에 맞서 법적 효력을 갖고 있는 조약(treaty) 형식의 대북 안전보장을 요구하면서 팽팽히 맞서 왔다.

그러나 파월 장관이 이달 7일 북한에 불가침을 서면으로 보장하고 의회 결의로 이를 뒷받침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다시 유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는 이라크전쟁 이후 강력해진 전세계적 반미 정서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떨어지는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 등을 감안할 때 유화적인 해법이 보다 유효하다는 온건파의 주장이 힘을 얻은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여전히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 형식의 안전보장을 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10일 파월 장관이 “클린턴 행정부 때보다 강력한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나, 19일 부시 대통령이 “대북 안전보장을 다자간 형식으로 검토하자”고 제안한 것 등 모두 이런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관련 변천사 일지
1994년:북-미간 제네바 합의.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 사용하거나 위협하지 않고,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 이행하기로 동의
2000년 5월: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북한 붕괴 원치 않는다는 친서 전달
2000년 10월: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방미. 공동성명 통해 “양국은 상대방에게 적대적 의사 가지지 않을 것” 선언
2000년 10월: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방북. 빌 클린턴 미 대통령 평양 방문 임박설
2002년 12월:북, 핵 동결 해제 선언
2003년 1월:북, NPT 탈퇴. 조약 형식의 대북 안전 보장 요구
2003년 8월: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북한에 불가침 서면 보장 및 의회 결의로 뒷받침하는 방안 언급
2003년 10월:파월 장관, “전 행정부보다 강력한 대북안전보장 방안 검토 중”발언
2003년 10월 19일:부시 미 대통령, 대북안전보장 다자간 형식으로 검토할 것 제안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北 ‘불가침조약’ 거듭 요구할듯▼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다자(多者)틀 안에서 북한의 안전보장’ 카드를 제시했지만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진일보한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북한이 다자안전보장 방식을 정식 수용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입장은 ‘미국이 적대적인 정책을 포기하고 이를 북-미간 양자대화를 통해서 확인해야 한다. 그 결과 법적 효력을 갖는 불가침조약이 양자 사이에 체결될 때에만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말로 요약된다.

따라서 북한이 ‘새 구상’에 선뜻 동의할 개연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의 제안이 양자가 아닌 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의 형태이고 법률적 효력이 없는 ‘어정쩡한 문서형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국대 고유환(高有煥) 교수는 “북한은 6자회담이 북한을 상대로 한 5 대 1의 압박공간으로 활용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져 왔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폐기에 진전을 보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는 점도 북한의 지지를 얻는 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나종일(羅鍾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태국 방콕 현지에서 “선(先) 북핵 포기는 미국의 기본구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한의 핵폐기 및 미국의 체제보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북한의 요구사항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미국의 새 제안이 앞으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것이란 점에는 동의했다. 미국이 “전례가 없다”며 불가침조약 체결에 반대해 왔지만 ‘다자간 합의각서’라는 방식이 제시된 만큼 진전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연세대 문정인(文正仁) 교수는 “현재로서는 이 방법 이외에 대안이 없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한미정상 공동 언론발표문 (요지)▼

(1)두 정상은 북핵문제, 이라크 재건문제, 한미동맹 발전방향 등에 대해 폭넓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2)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요청한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와 관련해 한미동맹관계의 중요성과 우리의 국익 등을 검토한 결과 추가 파병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파병부대의 성격 및 형태, 규모와 시기는 우리 군의 특성 및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고 이라크 재건과 안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3)두 정상은 북한 핵보유 불용과 평화적 해결원칙을 재확인하고 6자회담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제거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두 정상은 차기 (6자)회담을 조기에 개최하고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 견해를 같이 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이 핵무기 개발 야심을 포기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 폐기에 진전을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다자 틀 내에서 어떻게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을지 설명했다. 두 정상은 또한 북한이 상황 악화 조치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4)두 정상은 미군 재배치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신중히 고려해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방콕=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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