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드는 내각제]野 “盧정부 심판시기 앞당길 수도”

  • 입력 2003년 8월 29일 18시 38분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의 ‘내각제’ 발언이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박 의장은 28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내각제 개헌에 대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2, 3년 내에 대통령제라는 제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평소 지론을 말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정치권에선 박 의장이 내년 총선 이후 전개될 정국 변화를 염두에 두고 이런 발언을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 내각제를 총선 이슈로 던진다?=한나라당 일각에선 내각제가 단순한 권력구조 선호도 문제를 떠나 노 대통령에 대한 심판의 성격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 “대통령제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5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 ‘권력분점’을 내건 내각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될 수 있다는 논리다.

4선의 한 중진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국정 혼선이 계속될수록 대통령이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논의가 공론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내각제 개헌론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수의 영남권 의원들도 내각제 공론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복잡한 당내 사정도 반영돼 있다.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한 뒤 당내에서 뚜렷한 ‘대권주자’가 떠오르지 않고 있는 현실이 내각제론에 비중을 실어주고 있다.

‘내각제론자’를 자처하는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현실적 여건을 내세워 “내각제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황은 충분히 유동적이라는 게 당내 관측이다.

다만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은 “내각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여전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당내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권은 동상이몽(同床異夢)?=민주당도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이 될 경우 ‘내각제’ 카드를 통해 여권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류인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현재와 같은 정치상황이 6개월 안에 바뀌지 않는다면 총선 이후 대통령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들이 퍼져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당내 비주류 진영은 내각제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 좌장격인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는 본래 내각제를 지론으로 해 왔고,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도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절충형에 가까운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반면 청와대는 권력분점이 핵심인 내각제 논의에 부정적인 분위기다.

노 대통령은 25일 전국 공무원들과 온라인 대화를 가진 자리에서 “지금 우리는 전형적인 미국식 대통령제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1차적으로 필요하다”며 대통령 고유의 권한 행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대선 승리 직후 “국정2기(내년 총선 이후)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형태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자신의 국정운영 구상을 수정한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권력분점을 매개로 한 내각제 논의에 대통령을 흔들려는 저의가 깔려 있다는 인식이 반영됐다는 것.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부영(李富榮) 의원이 내각제 논의 반대를 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각제 논의는 복잡한 정치함수=내각제 논의는 정파들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진행될 공산이 크다. 현실적으로 개헌안 처리의 전제인 재적의석 3분의 2(현행 의석 기준으로 182석)를 확보하기 위해선 정파간 제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먼저 민주당의 신당 논의가 불씨를 지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의 분당이 현실화되면 ‘잔류 민주당’과 자민련, 그리고 한나라당이 내각제를 매개로 ‘반(反) 노무현’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변수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선택. 김 총재는 충청권 지분을 매개로 총선을 전후해 내각제를 변용한 권력분산형 정치구조 논의를 공론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내년 총선의 ‘캐스팅 보트’를 쥔 충청권 공략을 위해 한나라당 최 대표가 김 총재와 내각제를 매개로 전격 제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각제에 대한 국민 여론이 개선되지 않고, 총선에서 내각제에 부정적인 친노신당이 압승할 경우 내각제 논의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도 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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