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인공기 훼손 유감 표명]여론수렴도 없이 결정

  • 입력 2003년 8월 19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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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일부 보수단체의 북한 인공기 훼손 등에 유감을 나타내고 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일부 보수단체의 북한 인공기 훼손 등에 유감을 나타내고 있다. -박경모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9일 ‘북한 인공기 훼손 사태’에 유감 표명을 한 데 대해 청와대측은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성공적 개최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전반을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측 관계자도 이날 “유감 표명은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자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의 U대회 참가까지 무산될 경우 자칫 6자회담까지 깨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보수층의 예상되는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막아야 했다는 고육책(苦肉策)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탓에 NSC측은 이날 오후 북한이 U대회 참가를 통보해 오자 “북한도 끝까지 불참을 고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 ‘유감 표명’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참모들 간에 이견이 노출되는 등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측의 설명에 따르면 북측에 대한 유감 표명 결정은 18일 오전 10시반 열린 관계부처 대책회의에서 가이드라인이 정해졌고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 정부의 뜻을 전달하기로 결정됐다는 것.

하지만 정 장관은 18일 오후 북한에 ‘최근의 일로 북한이 오지 못하게 된 데 유의하고 있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냈다. ‘유감 표명’보다 상당히 완화된 표현이었다. 심지어 이날 나종일(羅鍾一) 대통령국가안보보좌관은 “정부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혼선이 빚어지자 노 대통령은 19일 아침 NSC를 통해 “유감 표명을 하는 게 좋겠다. 통일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직접 유감을 표명하는 발언까지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구경북 언론사 합동회견에서 “유감 표명을 지시했는데 정부의 참모들은 국민 정서를 생각해서 머뭇거린 것 같다”며 “내가 비판받을 각오를 했다”고 직접 설명했다.

문제는 여권 내에서조차 민간 집회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실상 북한측의 사과 요구를 수용한 것은 ‘너무 나간 행동’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8·15 행사가 보수-진보 양 진영으로 나뉘어 열리는 등 국론분열상이 심화되는 마당에 대통령이 직접 한쪽 편에 서는 발언을 함으로써 ‘남남(南南)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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