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증시 ‘北韓’이 울리고 웃겼다…北 1월 NPT탈퇴로 곤두박질

  • 입력 2003년 8월 5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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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북한이 6자회담을 수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1일 종합주가지수는 연중 최고치인 727.26까지 올랐다.

이어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숨진 4일 주가지수는 8포인트 내렸다.

종합주가지수는 국내외 경제 정치 사회 등 많은 요인에 따라 오르고 내려 한가지 원인으로 부침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2003년 증시는 북한 문제의 호전 또는 악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를 매개로 하는 북한과 증시의 상관관계는 북한 문제가 한국의 국가위험도(컨트리리스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 문제 따라 춤춘 증시=지난해 10월 북한은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핵 보유 사실을 알렸다. 이후 미국과 북한의 핵 보유 갈등이 시작됐고 북한은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당일 628.36을 나타낸 종합주가지수는 이후 600선을 깨고 내림세를 계속했다. 북한의 불가침조약 및 북-미 회담 요구에 미국은 다자회담을 고수했다.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추측도 무성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공조 의지에 대한 논란까지 겹치면서 4월 중순까지 주가지수는 600선을 밑돌았다.

물론 3월 11일 발생한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과 이어진 카드채 신용 불안 등 자본시장 자체의 불안도 주가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4월 12일 북한이 다자회담을 수용하자 주가지수가 600선을 돌파했지만 18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북-미-중 3자회담에서 큰 성과가 없자 다시 주저앉았다.

주가지수는 5월 외국인투자자들이 대규모의 순매수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상승을 시작했다. 외국인의 움직임은 5월 15일 열린 한미정상회담과 관련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 문제의 증시 영향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김승식 삼성증권 증권조사팀장은 “노 대통령이 미국과 공조할 뜻을 밝히자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 심리가 살아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또 있다. 외국인은 대체로 한국 시장과 대만 시장에서 같은 시기에 같은 매매 움직임을 나타낸다.

안선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이라크전쟁이 사실상 미국의 승리로 끝난 3월 중순 이후 대만에서 대규모의 순매수를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5월 28일 이후 본격적인 주식 순매수에 나섰다”고 말했다.

▽어떻게 분석할 수 있나=김 팀장은 “북-미 또는 남북관계가 늘 증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이 개선 또는 악화될 수 있는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증시가 신속히 반응하는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구체적인 호재가 없었지만 ‘한미간 갈등 해소 조짐’이라는 기대만으로도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며 증시가 700선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 특히 외국인들은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주요 언론과 행정부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김 팀장은 분석했다.

따라서 정 회장의 사망으로 생긴 공백이 남북 경협과 화해 무드에 미칠 영향과 6자회담 진행 추이는 또 한번 외국인들을 고민에 빠지게 할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對北지원 부담 벗을지도…” 현대株 하룻새 반등▼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자살로 급락했던 현대 관련주들이 하루 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전날 하락 폭이 컸던 만큼 제자리를 찾아오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대북사업 전망에 대한 시장의 평가 및 전망이 담겨 있다는 시각도 상당하다.

현대상사와 현대상선의 주가는 5일 전날보다 각각 3.9%, 1.9% 상승했다. 장 초반에는 5%까지도 반등세를 보여 전날 8%대의 하락 분위기와는 대조를 보였다.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현대건설도 1.5% 올랐고 현대증권은 보합세로 마감했다. 정 회장 장모의 지분을 통해 그룹 지배의 창구 역할을 한 현대엘리베이터만 이틀 연속 하락했다.

이런 반등세는 정 회장의 자살이 장기적으로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증권회사들의 분석이 이어진 데 따른 것. 향후 변수 등에 대한 의견도 중립적인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다시 들어오며 낙폭을 만회했다.

일부 증시 전문가들은 해당 기업들의 대북사업 진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오히려 주가 상승을 뒷받침한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장기적 차원의 사업 의의 등과는 별개로 당장 ‘돈 안 되는 사업’에서 벗어난다는 기대감이 생겨났다는 것.

현대그룹과 정부가 대북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자금 동원력이 없는 데다 현대기아차그룹이 “대북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투자전략팀장은 “이날 주가는 경제논리로 상황을 따지는 시장의 냉정한 반응”이라며 “그러나 독점사업권을 인정받고 이미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대북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도 득이 될 게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가람투자자문 박경민 사장은 “정 회장의 죽음으로 대북사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기업 펀더멘털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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