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송금 특검 중간점검]DJ정권 핵심들 '모종역할' 포착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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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의혹 사건’에 대한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서서히 그 ‘실체’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본격 수사에 착수한 특검팀이 첫 목표로 정한 것은 2000년 6월 현대상선의 2억달러 대북 송금의혹. 특검팀은 그동안 ‘감사원→산업은행→외환은행’ 순서로 20여명이 넘는 관계자들을 불러 당시 대출과 환전 및 대북 송금 과정 전반을 조사했고 상당한 단서를 포착했다.

또 현대상선과 현대건설 등의 계좌에 대한 광범위한 추적으로 의심스러운 돈의 흐름을 포착하는 한편 관계기관들에서 방대한 자료를 넘겨받아 검토했다.

특검팀은 그 과정에서 박상배(朴相培) 전 산업은행 총재와 이근영(李瑾榮) 전 금융감독위원장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특히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수행비서였던 하모씨의 자택에 대해 1일 특검팀이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한 것은 2억달러 대북 송금 과정에 박 전 실장 등 당시 정권 핵심 인사들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단서를 포착했음을 의미하는 것.

여기에 2억달러 환전에 관여했던 외환은행 관계자들을 통해 국가정보원이 대북 송금을 주도한 정황이 드러나고, 당시 2235억원 수표 26장에 배서한 6명이 모두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실도 그동안의 수사에서 드러났다.

국정원이 ‘환전 편의 제공’ 차원을 넘어 국가에서 운영하는 계좌를 이용해 북한으로 보낼 돈을 세탁했다면 이는 대북 송금의 성격을 뒤바꾸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에 대한 조사는 산은 대출과 외환은행을 통한 환전 및 송금, 이 과정에서 국정원의 역할 등을 명확하게 밝혀줄 중요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김 전 사장은 그동안 ‘북한에 보낸 돈은 정부가 갚을 돈’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조사는 앞으로 수사 속도와 방향을 결정짓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송금 당시 산은 총재로 있으면서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에게서 대출 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했던 이근영 전 위원장에 대한 조사도 외압 의혹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특검팀은 기대하고 있다.

2억달러 송금의혹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특검팀의 수사는 ‘나머지 3억달러+α’의 실체를 밝히는 쪽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정확한 송금 규모와 경위 등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여서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특검수사 정치권 반응 ▼

대북 송금 특검 수사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대북 송금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곳곳에서 드러나자 한나라당은 “국정원이 환전 편의만 제공했다는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해명이 완전한 거짓말로 드러났다”고 반색하면서 DJ정부 핵심부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면서 2000년 대북 송금 당시 김보현(金保鉉·현 국정원 3차장) 국정원 5국장이 노무현(盧武鉉) 정부에서 유임된 사실을 문제 삼아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 중인 송두환(宋斗煥) 특별검사팀이 조만간 김 차장을 조사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불법 대북 송금의 또 다른 주범격인 김 차장을 즉각 해임해 특검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김 차장 경질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김 차장을 중도 교체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고 일축하면서도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보좌관은 “상황을 좀 더 파악해 봐야겠지만 지금은 김 차장 거취 문제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보좌관은 “김 차장이 특검 수사 과정에서 분명히 책임져야 할 사안이 드러난다면 경질을 검토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정 보좌관은 이어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을 예로 들면서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정 장관이 유임된 것은 당시 남북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남북관계가 정돈되면 나중에 새로운 장관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안이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교체를 검토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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