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구 국정원장후보 인사청문회]"간첩 석방운동…사상 문제없나"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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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사상 처음으로 열린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 후보자의 정치경력과 이념성향 대북관, 국가정보기관장으로서의 자질과 업무능력 도덕성 등을 놓고 여야 의원들과 고 후보자간에 공방이 벌어졌다. 청문회를 주관한 국회 정보위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정보위의 종래 관행을 깨고 청문회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알권리를 이유로 청문회장인 국회 본관 145호실을 공개했다.

▽이념 성향=고 후보자의 재야·인권 변호사 시절 활동과 관련해 고 후보자의 이념적 편향성을 우려하는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함승희(咸承熙·민주당) 의원은 “92년 김일성(金日成)으로부터 200만달러의 공작금을 받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간첩 김낙중(金洛中)의 석방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았는가 하면, 대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판시한 한민통의 전신 한통련을 위해 활동한 점을 보면 정보기관 총수로서의 사상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격했다.

정형근(鄭亨根·한나라당) 의원도 “김낙중 사건은 내가 수사한 것으로 전형적인 간첩사건인데 고 후보자는 김씨를 어떤 책에서 ‘평화주의자’라고 평가했다. 그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유흥수(柳興洙·한나라당) 의원은 “고 후보자가 최근까지 활동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이라크 파병반대, 주한미군 철수, 양심수 석방, 한총련 합법화 등을 주장했다”며 “국정원에 들어가서도 같은 견해를 유지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고 후보자는 “변호사 시절 활동과 국가정보원장으로서의 역할은 다르고 달라야 한다. 국정원장으로서 주어진 책무를 다하도록 할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대북정책과 국정원 운영=박상천(朴相千·민주당) 의원은 “민변 회장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던 견해를 언제 수정했느냐”고 질문한 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회담과 관련해 “앞으로도 북한이 한국 참여를 반대할 경우 정부 대책이 뭐냐”고 따져 물었다.

이규택(李揆澤·한나라당) 의원은 “유엔으로부터 반인권국가로 규탄받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고 후보자는 “북한의 인권상태가 아주 열악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나 정부가 직접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과연 북한의 인권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는지 신중히 생각해야 할 일이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 “북한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북한 정권을 의도적으로 붕괴시킬 생각이 없다는 것이지, 북한이 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윤성(李允盛·한나라당) 의원은 “정부의 국가안보 관련 정보의 취합 조정 능력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성향이 우려될 만한 사람들이 중요한 창구에 앉아서 정보를 왜곡할 가능성에 대한 대책은 뭐냐”고 따졌다.고 후보자는 의원들이 국정원의 탈(脫)정치 탈권력화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요구한 데 대해 "지금까지는 원장을 비롯한 상층부가 그런 (국내) 정보활동을 허용, 묵인함으로써 국정원의 정치사찰이 있었다고 본다”며 “취임하면 지침을 명확히 작성해 정치사찰 금지를 명확히 주지시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치 경력=고 후보자의 야당 시절 당적 변경 등 정치인으로서의 이력도 도마에 올랐다.

함 의원은 “고 후보자가 민한당, 한겨레민주당 등을 옮겨 다니며 당적을 다섯 번이나 바꾼 것을 보면 전형적인 정치지향 인물”이라고 몰아붙였다. 정형근 의원도 “5공 정권의 관제야당인 민한당 의원을 지냈는데 개혁정권의 국정원장으로 적합하다고 보느냐”고 가세했다.

김옥두(金玉斗·민주당) 의원은 “고 후보자가 11대 총선 때 공천받은 민한당은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만든 허수아비 당이었다. 안기부가 전부 (출마를) 지시했고 전두환씨가 최종 공천을 했는데 몰랐느냐”고 다그쳤다. 박상천 의원은 고 후보자가 91년과 97년 신문기고에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한 점을 들며 “진보정당은 이념적으로 사회주의 내지 민주사회주의 정당, 지지계층으로는 노동자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을 말하느냐”고 추궁했다.

고 후보자는 민한당 공천을 받은 경위에 대해 “구체적 과정을 몰랐다”며 “내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점을 늘 생각하며 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김낙중 사건이란▼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낙중 전 민중당 공동대표가 ‘남한 조선노동당’ 결성과정에 연루돼 간첩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 김낙중은 조선노동당을 결성해 남한에 공산당과의 연정 정부를 세우려던 이선실(북한 권력서열 22위의 남파간첩)에게 포섭돼 2년6개월 동안 북한 공작원들과 접촉하면서 미화 210만달러(당시 약 16억원)를 공작금으로 받아 남한에 간첩망을 구축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연루자는 58명이었으며 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수사를 지휘했다.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쟁점
항목쟁점 사항고영구 후보자 답변
이념문제북한은 반국가단체인가아닌가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가 분명하지만 변화하는상황에 따라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한총련에 대한 입장은 한총련은 이적단체라는 대법원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한총련이 변화하는 만큼 국가도 변화된 사고로 대응해야 한다.
간첩 김낙중씨 석방운동을 했는데김씨가 실정법을 위반하긴 했지만 범죄 동기나 민주화 노력을 평가해 포용하자는 뜻이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나개인적으로 그 문제를 직접 제기한 적은 없다. 북한 인권 상태가 열악하지만 정부의 직접적 문제제기는 실효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에서 개정으로 돌아선 이유는완전 폐지를 주장한 적이 없으며 개인적인 소신은 개정 쪽이다.
이라크전 파병동의안에대한 입장은내가 의원이었다면 찬성했을 것이다.
국정원개혁국정원 편중 인사를 개편할 것인가인사제도에 대해 전반적으로 새로 검토해 보겠다.
민변의 국정원 수사권 폐지에 대한 생각은부분적으로 반대한다.
국정원 예산 공개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하다.
국내정치 정보를 수집할 것인가앞으로도 계속 수집하겠지만 수집 방법은 대폭 개선 변경하겠다.
기타5공 때의 보도지침과 문화관광부의 홍보방안에 대한 입장은당시와는 다르다. 언론보도의 자유와 정부부처의 공무수행간의 조화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어떤 점에서 코드가 맞다고 생각하나안정과 개혁의 문제에서 개혁에 무게를 두고 있는부분이 코드가 맞는 것 같다.

▼여야 떠나 송곳 추궁▼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사상성과 충성심 △능력과 전문성 △자질과 개혁성에 대해 ‘송곳 질문’을 퍼부어 한나라당 관계자들로부터도 “야당 의원보다 더 매섭다”는 평가를 받았다.

함 의원은 “고 후보자는 20여년간 당적을 다섯 번이나 바꿨다”며 “이는 결국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며 인생을 살아온, 정치철학이 없는 인물로 비친다. 과연 국정원장으로서 지녀야 할 확고한 국가관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국정원의 국가안보 정보능력이 절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는 이 시점에서 정보 분야의 비전문가인 고 후보자가 내정된 것은 국정원의 국가안보상 중요성을 도외시한 인사 아니냐”며 인사권자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까지 비판했다. 그는 또 “정권이 바뀌면 전문성이나 애국심이 아닌, 집권세력 편인가 아닌가의 기준으로 유능한 정보전문가들을 내쫓거나 좌천시켜 왔던 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국정원장 자리는 고 후보자와 코드가 전혀 안 맞는 자리”라며 여러 차례 용퇴를 촉구했다.

홍 의원은 “국가안전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정원엔 좌파 정부가 들어서도 우파 인사가 가는 것이 맞다”며“판사직 퇴임 이후 인생 대부분을 반 국정원 활동과 좌파 행보를 보여 온 고 후보자가 국정원장으로 가려니 답변하기가 옹색하고 힘든 것이다”고 말했다.

고 후보자가 “잘 하라는 충고로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홍 의원은 거듭 “고 후보자를 법조계 대선배로서 참으로 존경하지만 이 직책에는 맞지 않다. 청문회가 끝나면 그만두십시오”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민변 홈페이지 "파병 반대" 배너▼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은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초대 회장을 지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이념적 지향성을 문제 삼았다.

정 의원은 오전 질의에서 노트북까지 들고 나와 민변 홈페이지 화면을 고 후보자에게 보여주며 “빨간색 큰 글씨로 ‘이라크 침략전쟁 반대, 파병 반대, 미 제국주의 반대’라고 쓰여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고 후보자는 “내가 민변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동안엔 ‘미 제국주의 반대’라는 용어는 한 번도 써본 일이 없어 새삼스럽다. ‘미국은 제국주의자, 침략자다’라는 기조는 내가 알고 있는 민변의 기본 기조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며 선을 그었다.

정 의원은 그러나 오후 질의에서도 “새 정부의 요직에 민변 출신이 많다. 이제 민변은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이다”고 말하고,“문제의 홈페이지 내용이 오전 질의가 끝난 뒤에 싹 지워져 버렸다”며 민변과 고 후보자간의 긴밀한 관계를 거듭 추궁했다.

이에 대해 김인회(金仁會) 민변 사무차장은 “문제의 화면은 정기적인 홈페이지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이라크전이 끝났기 때문에 삭제한 것일 뿐이다”며 “정 의원의 말대로 민변이 주류가 됐다면, 민변의 주장에 많은 국민이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고 반박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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