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대표 "특검법 수용 유감"…민주 "청와대 독단적 의사결정"

  • 입력 2003년 3월 17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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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4일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북송금 특검 법안을 공포하자 당내에서 “청와대의 의사 결정 방식이 독단적이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신주류 핵심인 정대철(鄭大哲) 대표조차 17일 당무위원회의에서 당의 ‘조건부 거부권’ 건의가 묵살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당정 분리는 인정하지만 대통령을 만들어낸 정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청와대를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이 여당 맞나”=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선대위 간부를 맡아 노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당내 신주류 의원들도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노 대통령의 의사결정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신주류의 좌장 격인 김원기(金元基) 고문은 14일 “여야 협의를 위해 특검 법안 공포 여부 결정을 하루만 늦춰달라”는 당 지도부의 요구가 끝내 거절당하자 “노 대통령이 우리를 이렇게 묵사발 만들 수 있느냐”며 경악했다고 한 의원이 전했다.

정 대표도 이날 밤 김 고문,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과 폭음한 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386 참모’들만 데리고, 앞으로 잘해 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의 당내 핵심 지지 세력인 신주류의 이런 반응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새 정부 첫 각료 인선, 공기업 인사 논의 과정에서 배제돼 온 불만이 폭발한 것이란 분석이 많다.

신주류의 한 중진은 “청와대가 새 정부의 요직 인선과정에서 김 고문과 정 대표에게도 ‘협의를 하는 듯한 일방적 통보’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선대위 홍보본부장을 지낸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청와대의 의사 결정이 세력으론 ‘386 참모’, 지역적으론 ‘PK(부산경남)’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구주류측도 같은 목소리다.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는 “야당 대표가 여당을 제치고 청와대와 대화한다면, 앞으로 민주당은 여당 구실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천(朴相千) 최고위원도 “약화된 당의 위신과 기능을 회복하려면 당정 주례회동 등을 조속히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결과에 대한 다른 해석=이번 사태는 지난해 대선 직후 제기됐던 ‘노무현의 승리인가, 민주당의 승리인가’란 여권 내 논쟁의 연장선 위에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민주당에 끌려 다니기 시작하면 현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며 “‘당을 국정 파트너로 대하는 것은 내년 총선 승리 이후부터 하겠다’고 말해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의 한 ‘386 참모’는 “노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해 준 국민에게 빚을 졌지, 민주당 의원들에게 빚을 졌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며 “특검 문제와 관련해 ‘호남 민심’을 볼모로 청와대를 압박하려는 당내 움직임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런 인식과 국정 운영이 ‘소수 정권을 더욱 소수화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대북송금 특검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닌 민주당의 마지막 정체성을 지키려고 반대했던 것”이라며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세력조차 이번 특검 문제로 인해 등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신-구주류 갈등 증폭▼

17일 민주당 당무회의에서는 대북비밀송금사건 특별검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는 당측의 건의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심지어 이날 회의에서는 당 지도부 일괄사퇴 요구와 함께 노 대통령의 탈당 필요성까지 제기됐다.

또 4일 마지막 대야 협상 과정과 청와대 면담에서 배제됐던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이날로 사흘째 당무를 거부했다.

소장파인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햇볕정책은 자민련과 결별까지 하면서 지켜낸 정책이다. 특검법 공포는 당의 정체성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다”고 비판한 뒤 “당 지도부는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지도부 사퇴론을 꺼냈다.

정오규(鄭吾奎) 부산 서구지구당위원장은 “집권 여당으로서의 존재 이유에 대한 심한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낀다”며 “대통령은 초당적 국정 운영을 위해 내년 총선 때까지 당적을 이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도 성향의 김상현(金相賢) 상임고문도 “이번 사건으로 민주당의 기능이 상실됐다. 당이 중대 위기에 처해 있다”며 노 대통령과 정대철(鄭大哲) 대표간의 조속한 면담을 통해 집권 여당의 입지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동교동계의 김옥두(金玉斗) 의원은 “언론에 신-구주류로 나뉜 것처럼 비치게 만든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 의원총회에서 국익을 고려해 거부권을 행사하기로 당론을 정했는 데도 개인적으로 플레이한 사람들이 있다”고 신주류측을 겨냥했다.

특히 동교동계 좌장격인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는 “당의 전통적 지지자들과의 관계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앞으로 제대로 여당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면서도 “지금은 지도부 사퇴를 거론할 때가 아니고 당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선(先) 수습, 후(後) 책임추궁론’을 폈다. 정 대표도 “당을 수습하고 개혁안을 마련한 뒤 진퇴문제를 분명히 하겠다”고 사퇴론을 일축했다.

한편 여야는 특검법 개정 협상과 관련, 이르면 17일부터 개정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특검법 공포를 둘러싼 여권의 내부 갈등과 한나라당의 방관으로 이날 총무 접촉은 이뤄지지 못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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