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특검법 거부'로 가닥

  • 입력 2003년 3월 11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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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결정 시한(15일)을 앞두고 해법 마련에 고심을 거듭해 온 여권이 ‘거부권 행사’쪽으로 가닥을 정리해 가는 분위기다.

특히 민주당은 11일 상임고문 최고위원 연석회의에서 ‘특검법 거부’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한나라당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날 결론은 사실상 12일로 예정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간 회동에서 ‘재협상’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의 의미이기도 한 셈이다.

청와대의 기류도 이 같은 당 쪽의 입장 정리에 발맞춰 당초 거부권 행사에 부정적이었던 태도에서 조심스럽게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은 이미 야당이 단독 표결한 특검법안을 그대로 공포할지, 아니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재의(再議)를 요구할지를 논의하기 위해 14일 국무회의 소집을 지시해 놓은 상태.

노 대통령은 당초 이 사건을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하든, 검찰이 수사를 하든 결국은 특검제 도입 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아래 거부권을 행사해도 사태만 장기화시킬 뿐이라며 거부권 행사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사회원로와 시민단체 대표들을 잇달아 만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특검 수사가 이뤄질 경우 남북관계가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만만찮게 제기되자 노 대통령의 의중도 바뀌는 듯하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근 북한전문가 등이 특검을 도입할 경우 남북관계가 경색될 수 있고 더욱이 북한 핵문제를 놓고 대북 대화채널이 절실한 상황에서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최근 청와대가 내놓은 국내 자금조성 부분은 수사하되 국외 송금부분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특검법 재협상 안이나 민주당이 내놓은 조건부 거부권 행사 주장에 대해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12일로 예정된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오찬회동에서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여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검찰이 전격적으로 수사에 나서는 ‘정면돌파’ 방안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이 거부권 행사를 사실상 당론으로 확정한 것도 한나라당과의 타협에 실패할 경우 여권이 독자적인 해법을 통해 대북 송금 특검의 ‘수렁’에서 벗어나겠다는 데 내부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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