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행자, 군수-신문사대표 겸직 파문

  • 입력 2003년 3월 6일 07시 12분


공무원 조직의 최고 책임자인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이 ‘공무원 겸직 금지 의무’를 규정한 지방공무원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은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겸직한 회사가 일반 사기업이 아니라 군 행정을 비판, 감시하는 영향력 있는 지역 언론사였으며 언론사를 선거운동에도 활용했다는 점은 실정법 위반을 떠나 도덕성 시비까지 제기될 수 있다. 그동안 김 장관은 ‘언론과 권력 유착의 폐해’를 역설하며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기자실을 폐쇄하는 등 언론개혁 운동을 주도해 왔다.

▽지역 언론과의 유착=남해신문은 김 장관이 대표를 맡고 있던 ‘남해정론’이 기존의 남해신문과 합병해 만들어진 주간신문사. 김 장관은 1993년 합병 당시 전체 주식 1만주 가운데 2000주를 가진 최대 주주였다.

김 장관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남해신문에 대해 ‘남해의 가구 수는 2만가구로 2가구 중 1가구는 남해신문을 구독하는 셈이다. 권력기관이 잘못하는 것을 속 시원히 그리고 겁없이 쓰는 신문은 남해신문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중략)…부정과 비리에 대한 날카로운 폭로로부터 정부의 농업정책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정론의 길을 걸었다’라고 소개했다.

김 장관은 이처럼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남해신문’ 대표이사 지위를 유지한 상태에서 선거에 출마했으며 당선된 이후에도 8개월간이나 대표직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김 장관은 군수 선거운동 기간에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 기사를 내보내고 신문사 직원들을 선거운동에 동원하기도 했다.

남해신문은 투표 11일 전인 95년 6월 16일자에 ‘민자당 강태선 후보가 통영시에서 시비(市費)로 구입한 최신형 컴퓨터 1대를 비롯해 팩스 복사기 삐삐 등을 남해선거사무소에서 사용했다’는 기사를 6면 전면을 할애해 실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강 후보가 선거사무소에 가져간 것은 구형 386컴퓨터 한 대뿐이었다.

당시 관계자는 “김 장관은 이 기사가 실린 신문을 평소보다 5000부 더 찍어 기자와 직원들을 동원해 버스터미널 등에서 무료로 주민들에게 나눠줬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에 대해 “나에게 유리한 기사를 무가지로 찍어서 배부할 정도로 비양심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다”며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은 것은 투표장 앞에서 악수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본보 취재팀이 김 장관의 선거법 위반 1, 2심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김 장관은 남해신문 기사를 이용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돼(선거법 위반) 96년 벌금 80만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남해신문은 김 장관이 군수로 재직할 당시에도 그의 측근들이 편집국장과 주요 이사를 맡았다.

익명을 요구한 남해군청 고위 공무원은 “남해신문은 김 장관이 군수로 재직한 7년 동안 군청을 대변한 사실상의 ‘기관지’였다”고 폭로했다.

김 장관은 96년 1월 월간 ‘말’에 기고한 ‘지방자치독립투쟁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언론이 권력과 유착하면 국민은 불행해진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입장에 설 때라야, 긴장관계에 있을 때라야, 국민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방공무원법 위반=김 장관은 8개월간 남해신문 대표를 지낸 것에 대해 “실제로 일을 하지 않았고 퇴임했지만 서류상으로 정리가 늦어졌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조인과 주무부서인 행자부는 명백한 지방공무원법 56조 1항 위반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법무법인 한결의 정연순(鄭然順) 변호사는 “공무원 겸직 금지 조항은 공무원이 두 가지 직무를 수행할 경우 공직에 충실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공무에 있어서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을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실제 활동을 했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겸직을 유지했다면 이는 겸직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임도빈(任道彬) 교수는 “자치단체장은 최고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라며 “법이 허용하더라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실정법을 어긴 것은 공직자로서의 기본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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