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비밀송금 경제신뢰도 강타]'기업 투명경영' 5년 공든탑 흔들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55분


코멘트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및 재정경제부 관계자들과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 대표단이 만나 한국경제의 현 상황과 전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및 재정경제부 관계자들과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 대표단이 만나 한국경제의 현 상황과 전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외국인들은 한국이 구조조정을 해서 많이 투명해진 줄 알았는데 2억달러나 되는 큰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송금됐는지에 대해 논란이 빚어지는 것을 보고 빈정거리고 있다.”(메릴린치증권 이원기 전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대북(對北) 비밀송금이 현대그룹과 관련 금융기관의 신뢰 하락은 물론 국가 전체의 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현 집권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특정 대기업과 손잡고 은행에 무리한 대출을 요구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이어지는 공적자금 투입을 늘린 것은 정경유착과 관치(官治)경제의 전형적 모습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어렵게 이룩한 한국경제의 구조조정 성과를 퇴색시키고 중장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제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뿌리부터 흔들리는 국가신인도=지금까지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 가운데 비교적 구조조정에서 높은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강도 높은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으로 경영투명성이 상당히 높아졌고 금융시장도 꽤 건전해졌다는 것.

무디스 등 해외 신용평가회사들은 이런 투명성 개선을 감안해 국가신용등급을 높여왔고 주요 금융기관 및 대기업의 신용등급도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현대 계열사들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은 이런 ‘성과’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하고 있다. 대북 비밀송금이 지닌 음습한 성격도 그렇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그룹들 가운데 하나에서 이사회도 거치지 않은 채 거액이 빠져나가고 이런 내용이 재무제표와 공시에도 빠지면서 주주들을 우롱했기 때문이다. 또 이 과정에서 현 정권이 주장해온 ‘정경유착 근절’이 얼마나 공수표에 불과했는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스턴컨설팅 고위 관계자는 “최근 외국기업 경영진을 만나보면 한국에 대해 무척 불안해 하는 것 같다”며 “북핵 문제와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불확실한 데다 대북 비밀송금 사건까지 겹치면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식 삼성증권 증권조사팀장은 “현대상선은 외국인 지분이 크지 않고 한국의 대표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국가신용등급에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북-미관계 악화 등 다른 악재와 겹치면 국가신인도에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 계열사→은행→한국 순으로 불신 커져=산업은행은 요즘 기업들의 불신을 받고 있다. 산은에서 돈을 빌리면 감사원 감사와 국정감사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걱정 탓에 산은과 거래하길 꺼리고 있는 것. 실제로 산은의 기업대출 잔액은 작년 9월말 31조8206억원이었으나 현대상선 사태가 불거진 이후 대출이 줄기 시작해 12월말 30조5071억원으로 1조원 이상 줄었다.

외환은행도 고민하고 있다. 현대상선 현대건설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주거래 은행이기 때문에 대북 비밀송금 사건을 계기로 이들 회사가 흔들리면 은행에도 파장이 미치기 때문. 작년말 하이닉스 채무조정안이 통과되면서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이번 사태가 확대되고 있어 좌불안석이다.

북핵 문제 때문에 국가신인도가 이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상황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하고 있다. 국가신용위험 스와프 금리는 북핵 문제가 터지기 전인 작년 11월말 70bp(basic point)에서 1월말 78bp로 8bp 상승했다. 1bp는 0.01%포인트다. 국가의 신용위험을 나타내는 지표로 국가신용등급이 1등급이면 ‘0’이고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올라간다.

이런 가운데 대북 비밀송금으로 기업과 금융기관의 투명성이 의심받는다면 중장기적으로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친다.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 A씨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대북 비밀송금 사건을 덮는다면 그가 말하는 ‘재벌개혁’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며 “이 문제를 덮는다면 한국의 경제정책은 물론 나아가 새 정부의 투명성 전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신인도 1등급 떨어지면 5억달러 추가부담=국가신인도는 국가신용등급뿐만 아니라 기업과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리면 당장 기업과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빌려오는 자금의 차입금리가 크게 오른다.

전문가들은 영향력이 큰 신용평가회사가 국가신용등급을 1단계 조정하면 차입금리가 0.35%포인트 낮아지거나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1단계 떨어지면 연간 5억달러의 차입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된다는 뜻. 기업이 외국에서 보험을 들 때 내는 보험료도 신용등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궁극적으로 한국경제 전체가 져야 하는 유무형의 ‘코스트(비용)’가 훨씬 커진다는 뜻이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