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폐연료봉 이동흔적 포착]北, 核무기 개발 '한계선' 넘나

  • 입력 2003년 2월 2일 19시 01분


북한이 94년 제네바합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수조에 보관해 온 폐연료봉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미 정보위성에 포착됨에 따라 북한이 과연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결국 핵무기 개발을 위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넘어서는 안될 ‘한계선(red line)’을 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미국을 핵문제 해결을 위한 양자회담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또 한번 벼랑끝 전술의 수위를 높여 대미 압박을 강화하려는 것일까. 미국 내에서도 추정과 논란이 분분할 뿐 아무도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이 전한 바에 따르면 분명한 것은 북한 트럭이 폐연료봉 저장 수조가 있는 건물에 드나들었다는 것뿐이다. 문제의 트럭에 과연 폐연료봉이 실렸는지 여부는 추측만 난무할 뿐 확실한 증거는 없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현 단계에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시작했다고는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미 정보당국의 추측대로 북한이 진짜로 무모하게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태는 대단히 심각해질 수 있다.

만일 모든 외교적 설득이 실패하고, 북한이 핵무기 보유 단계에 이른다면 미국은 군사적 선택을 다시 고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최첨단 정밀유도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으로선 영변 핵시설을 초토화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론 이로 인한 전면전 발발과 한국이 입게 될 막대한 피해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94년 북한 핵위기 때도 미국이 영변 폭격을 검토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군사적 대응을 사용불가능한 카드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북한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의 전쟁을 두려워하며 북-미 불가침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북한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것을 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북한이 불가침협정만 체결되면 핵개발을 포기할 수 있다고 시종 주장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이번에도 영변 핵시설에 트럭을 출입시키면서도 이를 감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위성으로 샅샅이 내려다보고 있는 데도 그랬다.

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의 커트 캠벨 연구원은 “북한이 백주에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은 미국을 상대로 한 벼랑끝 전술의 일환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이 봐주기를 기대하며 의도적으로 핵 위협의 강도를 의도적으로 높인 것인지, 아니면 ‘해볼 테면 해보자’는 식으로 정말 핵개발에 나선 것인지는 사태의 진전을 좀더 지켜봐야 명확해질 것 같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NYT "北核위기 첫 군사대응"▼

미국 태평양 사령부가 한반도 주변의 병력 증강을 요청한 것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지만 북한의 핵위기가 계속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 배경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하다.

미 행정부는 태평양 사령부의 병력증강 요청은 북한 핵위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미 언론이 이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CBS방송은 태평양 사령부의 요청이 “북한의 새로운 도발적 움직임에 대한 대응”으로 이뤄졌다고 분석했고 뉴욕타임스도 이를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놓고 고조되는 위기에 대한 첫 군사적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은 거듭 ‘북핵과 무관한 요청’임을 역설하고 있다.

미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는 태평양사령부가 요청한 병력 증강은 대북 억지력 차원의 통상적 수준에서 검토되는 것일 뿐이라며 북핵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미 행정부의 입장을 상기시켰다.

한국군 내부에서도 미국의 이라크전 개전이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한반도 지역의 미군 전력 증강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1999년 코소보 사태로 주일미군 소속 키티호크 항모가 걸프지역으로 이동하자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 알래스카 엘먼도프 공군기지의 제90전투비행대대 소속 F-15E 전폭기 18대가 한국의 모 공군기지에 배치된 전례가 있다.

더구나 최근 주한미군의 U-2 정찰기 추락까지 겹치면서 한반도의 미군 전력 보강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U-2기 추가 배치를 ‘0순위’로 든다. 주한미군이 보유중이던 3대의 U-2기 중 지난달 26일 경기 화성시의 야산에 1대가 추락, 24시간 대북감시체제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또 F-15E 10여대를 한국에 추가 배치하고 미 본토나 괌 등 해외 미군기지에서 B-2, B-52 폭격기의 즉각 출동태세를 갖추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이 밖에 이라크전이 장기화될 경우 키티호크의 대체 항모를 한반도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미군 한반도주변 전력 증강계획

△주한미군 지원 위한 공군 병력 2000여명 추가 파병

△미국령 괌에 B-1 및 B-25 폭격기 24대 파견

△한국 및 일본 미군기지에 F-15 8대와 U-2 정찰기 파견

△항공모함 칼빈슨 한반도 주변에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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