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이렇게 풀자]5개국 전문가 진단

  • 입력 2003년 1월 13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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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에 이어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조치도 취소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연일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도 북한의 위협에는 결코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국 전문가들에게 좀처럼 풀리지 않는 북핵 위기의 해법을 들어 봤다.》

▽한국▽

북한은 우선 핵 개발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야 하고 만약 미국이 서면 안전보장을 제의하면 수락해야 한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없어지는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에 절대 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통령 친서 같은 형태를 통해 체제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까지 양보한 마당에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북핵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은 멀어진다.

북한이 핵 개발 포기를 선언하면 북-미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이때 한미 양국은 북미 대화 시작에 앞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에 대한 ‘과감한 접근’의 내용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북미 대화의 의제로 미사일과 핵 중 무엇부터 다룰 것인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한다면 정치 경제적으로 어떤 ‘당근’을 줄 것인지 등의 포괄적 내용을 담은 한미의 ‘대북정책 로드맵’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미국의 동의하에 ‘과감한 접근’의 일부를 북한에 제시해 북-미 대화가 진지한 협상으로 이어지도록 메신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노무현 당선자의 대미 특사단은 대북정책 로드맵의 준비작업을 시작하는 게 급선무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미국▽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대치와 관련해 어느 쪽에 책임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현 단계에선 무의미하다. 양국은 모두 상호 비방 및 위협에만 치중해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사가 걸린 벼랑끝 게임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고립과 대결보다는 대화와 협력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평양과 워싱턴은 모두 평화적 해결을 다짐하지만 자존심만을 내세운 채 신뢰 구축은 등한시하고 있다. 현재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방법의 하나는 제3자 개입이다. 북한이 협력을 거부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나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94년 북핵 위기 때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처럼 미국의 지도자들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주지사가 지난주 북한 외교관들과 회동한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공화당과 북한 양측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나선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대북 화해와 포용을 지지하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등장은 북한엔 좋은 기회이다. 북한이 한미간을 이간하려 한다면 실패할 것이다.

피터 벡 미국 한국경제연구소 실장·본사 해외칼럼니스트

▽중국▽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10일 북한의 NPT 탈퇴 선언 직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NPT 탈퇴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장 주석의 발언은 중국의 ‘제3국에 대한 내정 불간섭’ 원칙에 비춰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가 훼손돼 일본의 핵무장 우려 등 주변국으로 그 파장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 주석은 “대화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물리적 제재는 위기를 고조시켜 자칫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NPT 탈퇴 선언에 이어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북한의 입장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증거다. 미국이 직접 대화를 통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 모두 평행선을 달리는 현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양측 모두 94년 제네바 핵 합의의 준수 의지를 재천명하는 것이다. 양측이 서로 큰 양보를 하지 않으면서도 대화를 위한 명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전서(韓鎭涉)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

▽일본▽

북한은 ‘NPT 즉시 탈퇴’ 성명을 발표했지만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도 이를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과 NPT 가입국에 탈퇴 의사를 정식 통보하는 등 절차를 마치려면 적어도 3개월 반의 시간이 있다.

북한은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할 것이다. 미국이 당장 굽히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은 위기 수준을 더 높여 갈 것이다. 재처리시설을 가동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데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미국도 NPT탈퇴 철회와 핵시설의 재동결을 요구하는 안보리 권고 결의를 이끌어낸 뒤 해상봉쇄까지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94년 때와 달리 북한에 유화적인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대통령 당선, 한국내 반미 시위를 의식해 탈퇴 선언을 했을 수 있고 한국에 기대하는 면도 있다고 본다. 북한은 2월 초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라는 카드를 꺼낼지도 모른다.

일본의 역할도 더 커졌다. 일본은 북-일 수교회담과 안전보장협의회 개최해 두 장의 카드를 갖고 있다. 일본은 우선 안보협의회 개최를 요구해 ‘북한이 양보하면 수교 교섭은 물론 경제원조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있다.

이즈미 하지메(伊豆見 元) 일본 시즈오카(靜岡)현립대 교수

▽러시아▽

북한이 NPT 탈퇴 선언 등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지만 무조건 비난하기보다 북한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도 주권과 영토가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다. 그런데 북한은 안보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94년 체결한 제네바합의에 따른다면 올해 북한에 2기의 완공된 경수로가 제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하고 갑자기 핵개발 의혹을 이유로 중유 공급을 중단했다.

북한이 정말 핵과 미사일로 미국과 맞서려 한다고는 볼 수 없다. 북한은 미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최소한의 대응수단을 가지려는 정도일 것이다. 북한의 진정한 의도는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형식으로라도 안전보장을 받아내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주변국들의 ‘보증’도 받기를 원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의견을 듣기는 해도 결정은 ‘주체적’으로 한다. 1985년 북한을 NPT에 가입시키고 2000년 미사일 개발 동결 약속을 받아낸 러시아도 결정적인 영향력은 없다. 결국 유일한 해법은 미국이 직접 북한과 대화에 나서는 것뿐이다.

유리 바닌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 부장

▼정리▼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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