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核개발계획 파문]핵개발 착수 90년대 말은

  • 입력 2002년 10월 17일 19시 02분


북한이 새로운 핵개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90년대말 이후는 현 정권의 출범 이후와 일치하는 기간이다. 다시 말해 이른바 햇볕정책이 시행된 시기와 일치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98년 2월 취임 직후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하에서의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느라 남북관계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김 대통령 취임 직후인 98년 4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뤄진 비료 지원 협상도 결렬됐고, 북한은 같은 해 6월 강릉 앞바다에 잠수정을 침투시키고, 8월말에는 대포동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국제사회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일단 고비를 넘기면서 남북관계는 급진전했다. 남북은 98년 11월 시작된 금강산관광을 시작으로 대화의 물꼬를 마련해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으로까지 이어갔다.

북-미관계도 99년 불거진 금창리 핵의혹 시설 사찰문제로 갈등이 고조됐으나 금창리 시설이 단순한 동굴인 것으로 밝혀지고, 9월엔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 미사일회담에서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를 선언하면서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북-미관계는 포괄적인 협상을 통해 북한에 당근을 제공한다는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의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때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측근들에게 핵관련 시설은 금창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고 얘기했다는 첩보가 당시 정보소식통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북한이 농축우라늄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핵개발과 관련없는 금창리를 내세우는 형식으로 미국을 향한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을 사용해온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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